1901, 20세기 야구는 격변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리그이자 자칭 두 번째 메이저 리그인 아메리칸 리그는 8개 프랜차이즈 중 3개를 내셔널 리그 팀이 이미 주름잡고 있던 도시에 두었고, 높은 급여를 내세워 많은 내셔널 리그 선수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최고의 수확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지역 라이벌 팀인 애슬레틱스로 이적한 냅 라조이였습니다. 라조이는 평균 타율 .426, 14회 홈런, 125타점을 기록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팀은 시카고, 보스턴, 디트로이트에 이은 4위에 그쳤습니다. 균형 잡힌 공격력과 클락 그리피스(24승 7패, 평균자책점 2.67)를 필두로 한 강력한 투수진을 내세운 화이트삭스는 보스턴에 4경기 차 앞섰습니다. 내셔널 리그의 세인트루이스에서 넘어온 보스턴 투수 사이 영은 34세의 나이로 33승을 기록했습니다.\n\n피츠버그는 호너스 와그너, 진저 보몬트, 프레드 클라크가 이끄는 타선과 디콘 필립과 잭 체스브로를 앞세운 투수진으로 내셔널 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와그너는 리그 타율 4위와 타점 1위(126타점, 140경기 시즌)를 차지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타격왕은 .376의 타율을 기록한 세인트루이스의 제시 버켓이었습니다. 최하위 신시내티의 샘 크로포드는 홈런 16회로 리그 1위를 기록했습니다. 자이언츠의 20세 신예 크리스티 매튜슨은 7월 15일 카디널스를 상대로 20세기 첫 노히터를 달성했습니다.
1902, 1902년 시즌은 순위의 대격변을 맞이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의 밀워키 브루어스가 연고지를 세인트루이스로 옮기자, 내셔널 리그에 있던 카디널스 선수 6명이 새 팀으로 이적했습니다. 브라운스는 아메리칸 리그에서 필라델피아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는데,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는 마지막 12경기에서 11승을 거두며 1위를 기록했습니다. 7월 1일까지는 애슬레틱스가 6경기 차로 뒤지고 있던 가운데 새로 영입한 투수 루브 워델이 첫 승을 거두었습니다. 워델은 시즌의 첫 두 달 반을 결장했음에도 24승 7패를 기록했고 리그 탈삼진 1위를 기록했습니다. 3위 보스턴 소속의 사이 영은 385이닝을 던지며 32승 11패를 기록했습니다. 몇몇 내셔널 리그 스타들은 아메리칸 리그로 이적했는데, 그 가운데 필리스에서 워싱턴 세너터스로 팀을 옮긴 에드 델라한티는 .276의 타율로 리그 타격왕을 차지했습니다.\n\n내셔널 리그에서는 피츠버그 파이리츠만이 아메리칸 리그에 선수를 빼앗기지 않았고 덕분에 지난해와 동일한 팀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브루클린 슈퍼배스와 27경기 반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내셔널 리그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진저 보몬트와 호너스 와그너가 타선을 이끈 가운데 잭 체스브로, 제시 태너힐, 디콘 필립이 각각 20승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내셔널 리그에서 가장 열심히 뛴 선수로는 선발 46경기에서 45경기를 완투하고 410이닝을 던진 보스턴의 빅 윌리스가 있습니다. 보스턴 브레이브스는 윌리스와 토기 피팅거가 각각 27승을 달성했지만, 타선에 3할 타자가 단 한 명뿐이었고 결국 3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1903, 대립하던 두 메이저 리그가 1903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화해했습니다. 두 리그의 분쟁이 끝난 뒤 보스턴 아메리칸스가 9전 5승제로 열린 최초의 월드 시리즈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나이를 잊은 듯한 사이 영은 36세의 나이로 28승 9패를 기록했고, 영과 빌 디닌이 월드 시리즈에서 3승 1패로 피츠버그에 뒤지던보스턴의 4연승을 견인했습니다. 보스턴의 타선은 월드 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홈런(2차전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친 팻시 도허티(.331)가 이끌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3위를 기록한 클리블랜드의 냅 라조이는 .344의 타율로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필라델피아의 마운드에서는 에디 플랭크와 루브 워델이 빛났지만, 애슬레틱스는 보스턴에 큰차이로밀리며 2위에 그쳤습니다. 볼티모어에서 뉴욕으로 옮겨 첫 시즌을 치른 뉴욕 하이랜더스는 4위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습니다.\n\n파이리츠는 여전히 내셔널리그를 지배했습니다. 호너스 와그너, 진저 보몬트, 프레드 클라크가 모두 .340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고, 투수 샘 리버와 디콘 필립이 이들을 뒷받침했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 필립은선발로 나온 5경기에서 3승을 거두었지만 보스턴의 투수들이 피츠버그의 타선을 .237의 타율로 막아냈습니다. 정규 시즌에서 피츠버그의 경쟁 팀은 존 맥그로가 이끄는 뉴욕 자이언츠로, 함께 30승을 거둔 조 맥기니티와 크리스티 매튜슨, .350의 타율을 기록한 로저 브레스나한이 소속된 팀입니다.
1904, 아메리칸 리그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쟁 끝에 보스턴이 최초로 리그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2위 뉴욕 하이랜더스에게도 시즌 최종전에 우승할 기회가 있었지만, 41승 투수 잭 체스브로가 와일드 피치로 결승점을 내주면서 보스턴이 3-2로 승리했습니다. 아메리칸스에는 3할 타자가 없었지만, 베테랑 사이 영이 26승과 200탈삼진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5월 5일에는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아메리칸 리그 사상 최초의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냅 라조이는 .376의 타율과 102타점을 기록하면서 리그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습니다.\n\n뉴욕 자이언츠는 68승을 합작한 '철인' 조 맥기니티와 크리스티 매튜슨의 활약 속에 내셔널 리그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154경기로치러진 첫 시즌에서 자이언츠는 106승을 거두며 시카고 컵스를 13경기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호너스 와그너는 .349의 타율로 내셔널 리그 타율 1위를 차지했지만, 피츠버그는 4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평균자책점 1위는 1.61의 맥기니티, 탈삼진 1위는 212개의 매튜슨이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두 리그 챔피언 사이의 월드시리즈는 돌연 성사되지 않았는데, 자이언츠가 시즌 내내 우월함을 증명했다며 보스턴과의 경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1905, 1905년 시즌의 주인공은 뉴욕 자이언츠의 크리스티 매튜슨이었습니다. 투수 트리플 크라운(31승 9패, 평균자책점 1.28, 탈삼진 206개)을 달성하면서 팀의 시즌 우승을 이끈 이후, 매튜슨은 월드 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세 차례나 완봉승을 거두며 뉴욕에 우승을 선사했습니다. 마이크 돈린(.356)을 필두로 한 리그최고의 타선이 24세의 매튜슨을 도왔습니다. 신시내티의 사이 시모어는 타율(.377)과 타점(121)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피츠버그의 유격수 호너스 와그너도 .363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파이리츠는 9경기 차로 자이언츠에 밀렸습니다.\n\n애슬레틱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2경기 차이로 따돌리고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필라델피아는9월 말 화이트삭스와의 중요한 3연전에서 2승을 거두고 이후 5연승을 달리며 1위에 올랐습니다. 이 시즌 아메리칸 리그의 타자들은 부진했는데, 애슬레틱스에는 3할 타자가 없었고, 1위였던 팀 타율도 .255에 그쳤습니다. 필라델피아의 마운드에서는 루브 워델이 빛을 발했는데, 매튜슨과 마찬가지로 다승(26), 평균자책점(1.48), 탈삼진(287)에서 모두 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에디 플랭크 또한 애슬레틱스에서 25승을 기록했습니다. 클리블랜드는 5위에 그쳤지만 엘머 플릭은 .308의 타율로 리그 최고 타자가 되었습니다.
1906, 1906년 야구의 중심에는 시카고가 있었습니다. 컵스는 116승 36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손쉽게 내셔널 리그를 차지했고, 화이트삭스는 치열한 경쟁 끝에 아메리칸 리그 1위를 기록했습니다. 최초로 같은 도시에서 펼쳐진 월드 시리즈에서는 화이트삭스가 6차전 끝에 컵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컵스의 모데카이 '쓰리 핑거' 브라운은 정규 시즌에서 평균자책점 1.04를 기록했지만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는 2이닝 7실점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n\n팀 타율은 .230에 그쳤지만, 화이트삭스는 투수진의 꾸준한 활약 속에 뉴욕 하이랜더스를 3경기 차로 따돌렸습니다. 7월 25일 필라델피아와의 더블헤더에서 패한 후 시카고는 애슬레틱스에 9경기 차이로 뒤진 4위에 그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19연승을 내달렸고, 1위로 등극했습니다. 시카고는 시즌 내내 단 6개의 홈런에 그쳤는데, 리그 1위였던 필라델피아의 해리 데이비스는 그 2배인 12개를 때렸습니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의 조지 스톤은 .358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n\n컵스는 5월 중순부터 내셔널 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 6월 28일까지는 자이언츠가 2경기 차로 뒤쫓고 있었지만, 컵스는 남은 기간 71승 16패를 기록했고, 26경기에 25연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컵스는 타율(.262)과 평균자책점(1.76)에서 모두 리그 1위를 기록했고, 사실상 약점이 없는 팀이었습니다. 피츠버그의 호너스 와그너(.339)는 컵스의 해리 스타인펠트(.327)를 제치고 타격왕에 올랐으며, 자이언츠의 조 맥기니티는 27승을 거두며 컵스의 브라운을 1승 차이로 따돌리고 다승왕에 올랐습니다.
1907, 1907년에는 두 팀의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했습니다. 시카고 컵스가 처음으로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달성한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완승하며 첫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타이거스는 1차전 9회까지 2점 차로 앞섰지만, 동점을 내주었고 결국 12회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후 컵스는 4명의 투수가 각각 승리를 거두며 4연승을 기록했고, 모데카이 '쓰리 핑거' 브라운은 최종 5차전에서 2-0 완봉승을 기록했습니다.\n\n컵스는 5명의 투수가 각각 최소 15승과 2.00 미만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덕분에 내셔널 리그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17경기 차로 2위를 기록한 피츠버그는 .350의 타율을 기록한 호너스 와그너를 앞세워 내셔널 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했습니다. 필리스의 셰리 매기는 타율 .328로 와그너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타점에서는 와그너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습니다. 4위 자이언츠의 크리스티 매튜슨은 24승과 178개 탈삼진으로 내셔널 리그 1위에 올랐습니다.\n\n디트로이트는 투타의 조화 속에 필라델피아를 누르고 첫 번째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타이거스의 핵심은 첫 번째 풀타임 시즌에 .350의 타율과 119타점으로 폭발적인 활약을 보여 준 20세 외야수, 타이 콥이었습니다. 팀 동료 샘 크로포드는 .323의 타율로 리그 2위에 올랐고, 와일드 빌 도노반은 25승 4패로 투수진을 이끌었습니다. 10월 1일까지 필라델피아에 1경기 반을 앞서던 디트로이트는 5연승을 질주하면서 시즌 종료 전날에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1908,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치열한 우승 경쟁이 양 리그에서 벌어졌습니다. 내셔널 리그에서는 컵스가 시즌 마지막 날에 자이언츠를 눌렀습니다. 아메리칸 리그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정규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모두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결국 최종전의 승자인 타이거스가 우승을 차지했고, 화이트삭스는 1경기 반 뒤진 3위에 그쳤습니다. 흥미로운 시즌 이후, 월드 시리즈는 컵스가 타이거스를 4승 1패로 누르며 상대적으로 싱겁게 끝났습니다.\n\n내셔널 리그 최종전인 10월 8일, 컵스의 스타 모데카이 '쓰리 핑거' 브라운은 1회부터 선발 투수 잭 피스터의 뒤를 이어 등판해 자이언츠의 스타이자 리그에서 가장 압도적인 투수(37승 11패, 평균자책점 1.43, 탈삼진 259개)인 크리스티 매튜슨을 상대했습니다. 결국 이 경기에서 컵스가 4-2로 승리했고, 컵스는 5연승을 기록했습니다. 브라운(29승 9패)과 에드 레울바흐(24승 7패)는 매튜슨의 뒤를 이어 다승 2위와 3위를 기록했습니다. 피츠버그의 호너스 와그너는 타율(.354)과 타점(109)에서 모두 자이언츠의 마이크 돈린을 제치고 내셔널 리그 1위를차지했습니다. 하지만 파이리츠는 10월 4일 최종전에서 컵스에게 패하며 자이언츠와 함께 컵스에 1경기 차로 우승을 내줬습니다.\n\n디트로이트는 우천으로 취소된 경기 덕분에 반 경기 차이로 클리블랜드를 밀어내며 아메리칸 리그의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타이거스의 타이 콥은 .324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리그 최고의 투수는 10월 2일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클리블랜드의 애디 조스(24승 11패, 평균자책점 1.16)와 49경기 선발로 등판해 464이닝을 던지고 40승 15패를 기록한 화이트삭스의 에드 월시였습니다.
1909, 시카고 컵스는 104승을 기록하며 4년 연속 내셔널 리그 왕좌에 오르는 듯했지만,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110승 42패를 거두며 이를 저지했습니다. 월드 시리즈 승부는 보다 험난했지만, 파이리츠는 디트로이트와의 승부에서 승패를 반복한 끝에 최종 7차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피츠버그의 선발 투수 베이브 애덤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세 번의 완투승을 거두었고, 7차전에서는 6피안타 완봉승을 달성했습니다. .377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를 지배했던 타이거스의 타이 콥은 월드 시리즈에서 .231의 타율에 그치고 말았습니다.\n\n타자로는 호너스 와그너(타율 .339, 100타점)가, 투수로는 하위 캠니츠(25승 6패, 평균자책점 1.62)가 피츠버그를 이끌었습니다. 27세 루키 애덤스는 그해 말 12승 3패, 평균자책점 1.11을 기록했습니다. 컵스는 5월 29일까지 선두를 달렸지만, 다음 날 열린 파이리츠와의 더블헤더에서 모두 패한 뒤로는 다시 선두에 올라서지 못했습니다.\n\n디트로이트는 8월 말에 기세를 높였고, 14연승을 달리며 리그 선두로 올라섰는데, 연승 기간 강력한 우승 경쟁 상대였던 애슬레틱스와 레드삭스를 상대로 3차례 완승했습니다. 조지 멀린(29승 9패, 평균자책점 2.22)이 에이스였지만, 에드 윌렛(22승 9패, 평균자책점 2.33)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필라델피아의 22세 유격수 에디 콜린스는 .347의 타율을 기록하며 콥에 이어 메이저 리그 2위를 차지했습니다.
1910, 1910년 시즌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은 팀이 아닌 두 선수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클리블랜드의 베테랑 냅 라조이는 .384의 타율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경쟁에서 타율 .383의 디트로이트의 신성 타이 콥을 간발의 차이로 앞섰습니다. 하지만 두 팀 모두 우승 경쟁에는 끼지 못했는데,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가 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월드 시리즈에서는 시카고 컵스를 4승 1패로 꺾고 우승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던 필라델피아의 타선은 월드 시리즈에서도 .316의 타율을 기록하며 35점을 올렸습니다.\n\n지미 콜린스(타율 .324, 81타점)가 애슬레틱스의 공격을 주도했고, 잭 쿰스와 치프 벤더는 빼어난 투구를 선보였습니다. 두 투수는 도합 54승 14패를 기록했습니다. 워싱턴은 7위에 그쳤지만 22세의 월터 존슨은 313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탈삼진 1위를 차지했습니다.\n\n컵스 역시 다재다능한 투수들의 조화 속에 내셔널 리그를 지배했습니다. 모데카이 '쓰리 핑거' 브라운(25승 13패)과 킹 콜(20승 4패)이 투수진을 이끄는 가운데 6명의 투수가 10승 이상을 거두었습니다. 내셔널 리그 타격왕은 필라델피아의 셰리 매기(타율 .331, 123타점)의 차지였지만, 솔리 호프만 역시 .325의 타율로 컵스를 주도했습니다. 2위 뉴욕 자이언츠의 크리스티 매튜슨은 27승으로 리그를 주도했지만, 탈삼진에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얼 무어보다 1개 적은 184개로 2위에 그쳤습니다.
1911,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는 초반에 부진했지만 결국에는 손쉽게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월드 시리즈에서도 뉴욕 자이언츠를 꺾으면서 월드 시리즈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월드 시리즈는 5차전까지 내내 1~2점 차의 접전이었지만, 5차전에서 자이언츠가 연장전 끝에 승리하면서 승부를 끌고 갔습니다. 하지만 이후 필라델피아가 6차전에서 13-2의 대승을 거두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애슬레틱스의 프랭크 베이커는 월드 시리즈에서 극적인 홈런 2개를 때리면서 '홈런' 베이커로 명성을 얻었습니다.\n\n애슬레틱스는 8월 4일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와의 더블헤더에서 완승하면서 디트로이트를 제치고 1위에 올랐는데, 이후 필라델피아가 38승 16패를 기록하며 13경기 반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에디 콜린스가 .365의 타율로 애슬레틱스를 이끌었지만, 타율 순위에서는 디트로이트 타이 콥의 .420에 크게 못 미치는 4위에 그쳤습니다(코르크심을 사용한 공이 양 리그에 새로 도입되면서 타율이 올라갔습니다). 콥은 역대 아메리칸 리그 최고 기록인 127타점도 기록했습니다. 애슬레틱스의 잭 쿰스는 28승 12패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기록했고, 35세의 팀 동료 에디 플랭크는 22승 8패, 평균자책점 2.10을 기록했습니다. 시카고의 에드 월시 또한 지칠 줄 모른다는 듯 369이닝을 던지며 27승 18패, 평균자책점 2.22를 기록했습니다.\n\n자이언츠 역시 공수에서 모두 우월함을 뽐내며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크리스티 매튜슨과 루브 마쿼드는 도합 50승 20패를 기록했고, 포수 치프 마이어스는 최고점인 .332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게다가 뉴욕의 주전 선수 5명이 38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피츠버그의 호너스 와그너는 37세의 나이로 내셔널 리그 타격왕에 올랐으며(.334), 최하위 보스턴 브레이브스의 닥 밀러는 .333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1912, 1912년 월드 시리즈 최종전은 극적으로 끝났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10회 말 역전에 성공하며 뉴욕 자이언츠에 3-2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평범한 플라이볼을 뉴욕의 중견수 프레드 스노드그라스가 놓쳐버렸고, 이후 래리 가드너의 희생 플라이로 경기가 끝났습니다. 자이언츠는 3승 1패로 뒤지던 상황에서 루브 마쿼드와 루키 제프 테스로가 완투승을 거두며 레드삭스를 위협했습니다.\n\n4월 11은 레드삭스가 펜웨이 파크를 처음 사용한 날로, 이날 22세의 '스모키' 조 우드는 뉴욕을 꺾었습니다. 우드가 34승 5패를 기록했지만, 이 시즌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투수는 2위를 기록하며 이변을 일으킨 워싱턴 세너터스의 월터 존슨(33승 12패, 평균자책점 1.39, 탈삼진 303개)였습니다.디트로이트의 타이 콥은 .409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타이거스는 6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트리스 스피커(.383)는 보스턴 최고의 타자였습니다.\n\n자이언츠는 6월 19일부터 7월 3일까지 16연승을 기록하며 다른 팀에 10경기 앞선 채 1위를 질주했습니다. 마쿼드는 승리투수 조건을 달성한 첫 19경기에서 모조리 승리했고, 시카고의 래리 체니와 함께 시즌 26승을 달성하며 내셔널 리그 다승 1위를 차지했습니다. 또 다른 컵스 선수인 하이니 짐머맨은 .372의 타율로 타격왕을 차지했습니다. 파이리츠의 38세 선수 호너스 와그너는 .324의 타율을 기록하며 리그 1위인 102타점을 올렸습니다.
1913, 1913년 월드 시리즈는 1911년 월드 시리즈 대결의 재현이었고, 결과 역시 같았습니다. 이번에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가 뉴욕 자이언츠를 꺾었습니다. 5차전에서 에디 플랭크가 단 2안타만을 허용하면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대표 타자인 프랭크 베이커와 에디 콜린스 역시 각각 .450과 .421의 맹타를 휘둘렀습니다.\n\n페넌트레이스에서 애슬레틱스의 적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팀에도 선전한 선수들이 있었는데, 워싱턴의 투수 월터 존슨(36승 7패, 평균자책점 1.14, 탈삼진 243개, 346이닝)은 아메리칸 리그의 모든 투수 기록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타이 콥(.390)과 클리블랜드의 조 잭슨(.373)은 빼어난 타격을 선보였습니다.\n\n뉴욕은 지난해와 크게 변하지 않은 라인업으로 3년 연속 내셔널 리그 왕좌에 올랐습니다. 크리스티 매튜슨은 팀내 최다인 25승을 기록하며 리그 1위인 평균자책점 2.06으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포수 치프 마이어스와 유격수 아트 플레처가 자이언츠 최고의 타자였습니다. 리그 타율 1위는 브루클린의 제이크 도버트(.350)와 필라델피아의 개비 크라바스(19회 홈런, 128타점)가 차지했습니다. 필리스의 톰 시튼은 내셔널 리그 다승(27)과 탈삼진(168) 1위를 기록했습니다.
1914, 34승 10패로 시즌을 마무리한 보스턴 브레이브스는 7월까지 최하위를 유지하다가 10경기 반 차이로 자이언츠를 밀어내고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는 99승을 거두며 2위 레드삭스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월드 시리즈에서는 단 한 경기에서만 2점 이상을 내는 데 그치며 브레이브스에 4전 전패로 패했습니다. 브레이브스 투수 딕 루돌프와 빌 제임스는 각각 26승을 거두면서 팀의 성공을 이끌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타이 콥은 .368의 타율로 또다시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워싱턴의 월터 존슨은 28승과 225개 탈삼진으로 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 레드삭스는 레이 콜린스, 더치 레너드, 루브 포스터, 어니 쇼어로 구성된 투수진이 위력을 발휘했는데, 이 가운데 레너드는 평균자책점 0.96을 기록했습니다.
1915, 아메리칸 리그에서 보스턴과 디트로이트는 시즌 내내 우승을 놓고 경쟁한 끝에 레드삭스가 타이거스를 간발의 차로 제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31승과 평균자책점 1.22를 기록한 피트 알렉산더를 앞세운 필라델피아는 91승으로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필라델피아가 1차전에서 승리했지만, 이후 4경기에서는 레드삭스가 연승을 거뒀는데, 특히 그중 세 경기는 마지막 타석에서 점수를 내며 5경기 만에 승리했습니다. 디트로이트 외야수 타이 콥(타율 .369, 144득점, 99타점, 96도루)은 5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했고, 자이언츠의 2루수 래리 도일은 내셔널 리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320). 필리스의 강타자 개비 크라바스(타율 .285, 24홈런, 115타점)는 내셔널 리그 3시즌 연속 홈런 1위를 달성했습니다. 워싱턴의 월터 존슨은 27승과 203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여전히 아메리칸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투수임을 보여주었습니다.
1916, 브루클린 로빈스는 외야수 잭 휘트, 투수 루브 마쿼드, 잭 페퍼의 활약 속에 필라델피아와 보스턴을 제치고 팀 역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화이트삭스와 타이거스의 치열한 추격을 따돌리고 2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또한, 보스턴은 월드 시리즈에서 브루클린을 4승 1패로 누르면서 1915년의 월드 시리즈 타이틀을 지켜냈습니다. 레드삭스의 투수 베이브 루스는 23승을 거두면서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했습니다(1.75). 필라델피아의 피트 알렉산더는 33승, 평균자책점 1.55, 탈삼진 167개로 내셔널 리그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외야수 트리스 스피커(타율 .386, 211안타, 102득점, 79타점, 35도루)는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경쟁에서 타이 콥을 꺾었지만, 콥은 도루 68회로 양대 리그 최다 도루를 기록했습니다.
1917, 투수 에디 시콧과 타자 조 잭슨, 에디 콜린스의 활약 속에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100승을 달성하며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뉴욕 자이언츠 역시 98승을 거두며 여유롭게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월드 시리즈 첫 4차전 동안 양 팀은 홈에서 2승씩 나눠 가졌지만, 5차전과 6차전을 화이트삭스가 승리하면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신시내티의 에드 로쉬는 .341의 타율로 첫 타격왕에 올랐으며, 타이 콥은 이번에도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이 되었습니다(.383). 필리스의 투수 피트 알렉산더(30승 13패, 평균자책점 1.83, 200탈삼진)는 4년 연속 다승, 이닝, 탈삼진 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
1918, 1918년 시즌은 제1차 세계 대전과 함께 야구가 비필수 산업으로 공표되면서 단축 시즌으로 끝났습니다. 보스턴이 클리블랜드와 워싱턴을 따돌리고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고, 컵스는 84승 45패로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투수 베이브 루스와 칼 메이스가 각각 2승씩 기록한 끝에 레드삭스가 4승 2패로 우승했습니다. 타이 콥은 .382의 타율로 다시 한번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브루클린의 잭 휘트는 신시내티의 에드 로쉬와 하이니 그로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의 타격왕이 되었습니다. 세너터스의 투수 월터 존슨(23승 13패, 평균자책점 1.27, 162탈삼진)은 여전히 리그 최고의 투수였으며, 클리블랜드의 스탠 코벨레스키(22승 13패, 평균자책점 1.82) 또한 엄청난 시즌을 보냈습니다. 시카고의 투수 히포 본은 내셔널 리그 다승(22), 평균자책점(1.71) 및 탈삼진(148) 1위를 기록했습니다.
1919, 블랙삭스 스캔들.\n\n시카고는 20승을 거둔 투수 에디 시콧과 레프티 윌리엄스, 타자 '맨발' 조 잭슨과 에디 콜린스의 활약으로 아메리칸 리그를 지배했습니다. 신시내티 레즈는 빼어난 투수진과 에드 로쉬, 하이니 그로로 대표되는 타선을 앞세워 96승을 거두고 처음으로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1919년 월드 시리즈는 야구 역사상 가장 불명예스러운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레즈가 화이트삭스를 꺾은 가운데 일부 시카고 선수가 승부조작 혐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커미셔너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는 결국 선수 8명을 포함한 다수의 외부 연루자에게 영구 제명이라는 징계를 내렸습니다. 보스턴의 베이브 루스는 외야수로만 보낸 첫 시즌에서 29개의 홈런을 기록했는데, 양대 리그 종합 2위인 필라델피아의 개비 크라바스보다 17개나 많이 때렸습니다. 하지만 레드삭스는 5할 승률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보스턴은 루스를 10만 달러에 양키스로 보냈고, 이후 86년 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디트로이트 외야수 타이 콥은 .384의 타율을 기록하며 자신의 13번째이자 마지막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워싱턴의 월터 존슨(20승 14패, 평균자책점 1.49, 147탈삼진)은 전체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했는데, 데드볼 시대의 마지막인 이 시즌에 많은 선수가 2.00 미만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1920,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최초로 아메리칸 리그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9월에 1919년 월드 시리즈 승부조작으로 8명의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징계를 받으면서 인디언스가 어느 정도 덕을 본 것입니다. 브루클린은 9월에 기세를 올리면서 자이언츠와 레즈를 제치고 두 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1승 2패로 뒤지던 인디언스가 내리 4경기를 승리하며 팀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트리스 스피커(타율 .388, 137득점, 69장타, 107타점)가 클리블랜드의 핵심인 가운데 투수 짐 배그비와 스탠 코벨레스키는 도합 55승을 기록하면서 각자 평균자책점 순위 5위 안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에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격수 레이 채프먼이 8월 16일 칼 메이스의 투구에 맞았고, 며칠 뒤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양키스의 외야수 베이브 루스는 1919년 자신의 기존 기록보다 2배 가까이 많은 54개의 홈런을 쳐냈습니다. 브라운스의 강타자 조지 시슬러는 .407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을 차지했고 80년 이상 깨지지 않았던 257개 안타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로저스 혼스비는 내셔널 리그에서 6년 연속 타격왕에 올랐고(.370), 브루클린은 스타 투수라고는 스핏볼 투수 벌리 그라임스(23승 11패, 평균자책점 2.22) 하나뿐이었지만 리그 최소 실점을 달성했습니다.
1921, 베이브 루스는 3년 연속 단일 시즌 홈런 기록을 경신했고, 뉴욕 양키스는 시즌 마지막 주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따돌리며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루스의 59홈런과 171타점은 다른 선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칼 메이스(27승 9패, 평균자책점 3.05)와 웨이트 호이트(19승 13패, 평균자책점 3.09)가 아메리칸 리그 투수들 가운데 가장 빛났습니다. 조지 켈리, 프랭키 프리쉬, 로스 영스의 강력한 공격력을 앞세운 뉴욕 자이언츠는 파이리츠와 카디널스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자이언츠는 9전 5승제로 치러진 마지막 월드 시리즈에서 5승 3패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20년대에만 4번의 타격왕에 오른 디트로이트의 해리 헤일만(타율 .394, 19홈런, 139타점)은 첫 번째 타격왕이 되었고, 카디널스의 2루수 로저스 혼스비는 .397의 타율로 다시 한번 내셔널 리그 타율 1위가 되었습니다. 메이스와 브라운스의 어번 샤커는 아메리칸 리그 최다인 27승을 기록했고, 시카고의 레드 페이버(25승 15패, 평균자책점 2.48)는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습니다. 피츠버그는 윌버 쿠퍼, 베이브 애덤스, 화이티 글래즈너라는 리그 최고의 투수진을 자랑했지만, 타선의 부진 속에 자이언츠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1922,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는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타자 조지 시슬러(타율 .420, 8홈런, 105타점, 134득점, 51도루)와 강타자 켄 윌리엄스(타율 .332, 39홈런, 155타점, 128득점, 37도루)를 앞세우며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하지만 브라운스는 1경기 차이로 뉴욕 양키스를 따라잡지 못하고 우승을 내주었습니다. 안정적인 전력의 뉴욕 자이언츠는 손쉽게 내셔널 리그를 차지한 데 이어 월드 시리즈에서 2년 연속 양키스를 꺾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로저스 혼스비는 .401의 타율과 홈런 42개, 152타점으로 첫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타이 콥 또한 .401의 타율을 기록하며 1922년에만 3명의 타자가 4할의 벽을 깼습니다. 피츠버그의 맥스 캐리는 51개의 도루에 성공하며 지난 10년간 7차례나 내셔널 리그 도루왕에 올랐고, .329의 타율과 140득점을 기록하며 파이리츠를 3위로 이끌었습니다. 애슬레틱스의 투수 에디 롬멜(27승 13패, 평균자책점 3.28)은 팀은 리그 7위에 그쳤음에도 다승 1위에 올랐습니다. 화이트삭스의 투수 찰리 로버트슨은 4월 30일 통산 4번째 선발 경기에서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습니다.
1923, 양키 스타디움이 개장한 첫 시즌, 양키스는 97승으로 3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페넌트레이스 우승이자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첫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3년 연속 월드 시리즈에서 만난 라이벌, 자이언츠(감독 존 맥그로)를 상대로 4승 2패를 거두며 마침내 첫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올랐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해리 헤일만은 .403의 타율로 두 번째 타격왕에 올랐고, 카디널스 2루수 로저스 혼스비는 .384의 타율로 4년 연속 내셔널 리그 타격 1위를 차지했습니다. 베이브 루스는 타율에서는 헤일만에 이은 2위(.393)였지만 홈런(41)과 타점(131)에서는 아메리칸 리그 1위를 기록했습니다. 신시내티의 투수 돌프 루케와 에파 릭시는 내셔널 리그에서 유일하게 평균자책점 3.00 미만으로 시즌을 끝냈지만, 레즈의 공격력은 자이언츠를 넘기에 부족했습니다. 최하위 필라델피아의 외야수 사이 윌리엄스(.293, 41홈런, 114타점) 역시 좋은 시즌을 보냈습니다. 7월 22일, 월터 존슨은 역사상 최초로 통산 3,000탈삼진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1924, 워싱턴 세너터스는 92승으로 양키스를 제치고 사상 첫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실점이 613점에 불과할 정도로 강력한 투수진이 우승의 원동력이었고, 월터 존슨(23승 7패, 평균자책점 2.72, 158탈삼진)은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습니다. 뉴욕 자이언츠는 4년 연속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올랐지만,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세너터스에 4승 3패로 지고 말았습니다. 베이브 루스는 이번 시즌에도 46개의 홈런을 때렸는데, 오직 다른 다섯 명의 타자들만이 20개를 넘겼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루스는 .378의 타율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타격왕에 등극했습니다. 브루클린의 대지 밴스(28승 6패, 평균자책점 2.16, 262탈삼진)는 34세의 나이로 시즌에 돌풍을 일으키며 내셔널 리그 다승, 평균자책점, 완투, 탈삼진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습니다. 투수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피트 알렉산더)는 9월 시카고 컵스에서 개인 통산 300승을 달성했습니다.
1925, 1925년은 14명의 선수가 200개 이상의 안타를 기록할 정도로 타격의 시대였습니다. 이 중에서 로저스 혼스비는 타율 .403, 39홈런, 143타점으로 내셔널 리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타자 세 명이 .370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가운데 해리 헤일만은 .393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1위를 차지하며 팀에기여했습니다. 같은 해,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서는 지미 폭스, 미키 코크레인, 레프티 그로브가 데뷔했지만, 20승 투수 월터 존슨과 스탠 코벨레스키가 이끄는 워싱턴 세너터스에 크게 밀려 아메리칸 리그 2위에 머물렀습니다. 세너터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만나 3승 1패로 앞서갔지만, 이후 내리 3연패를 당하며 우승에 실패했습니다. 1925 시즌 챔피언 파이리츠는 8명의 주전 타자가 .298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고 6명의 선수가 85득점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했습니다. 양키스는 3명의 타자가 20홈런 이상을 기록했지만, 아메리칸 리그 7위라는 절망적인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1925년 봄에는 향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트리스 스피커와 에디 콜린스가 각각 3,000안타 고지를 밟았습니다.
1926, 1925년에 부진했던 양키스가 다시 반등하여 91승을 기록하며 클리블랜드를 3게임 차이로 따돌리고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로저스 혼스비와 짐 바텀리, 그리고 무명 3루수 레스 벨의 활약 속에 팀 역사상 처음으로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진출한 포스트시즌에서 7차전의 접전 끝에 뉴욕 양키스를 누르고 월드 시리즈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베이브 루스는 2위보다 2배 이상 많은 47개의 홈런을 치며 상대 마운드를 폭격했지만, 디트로이트의 하이니 마누시가 .378의 타율을 기록하며 루스를 6리 차이로 제치고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인디언스의 투수 조지 울레(27승 11패, 평균자책점 2.83)는 1920년대에 두 번째로 메이저 리그 전체 다승 1위에 올랐고, 피츠버그의 레이 크레머는 20승, 평균자책점 2.61로 내셔널 리그를 접수했습니다. 신시내티의 포수 버블스 하그리브는 .353의 타율로 포수 최초의 타격왕이 되었습니다. 자이언츠의 외야수이자 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로스 영스는 브라이트병 진단을 받았고, 1년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1927, 1927년의 양키스는 여전히 야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으로 손꼽히며, 110승으로 손쉽게 아메리칸 리그를 차지했습니다. 게릭, 루스, 라제리, 뮤젤, 콤스의 '살인 타선'은 총 975득점을 올렸고, 웨이트 호이트, 어번 샤커, 허브 페녹, 더치 로이터의 선발진은 599점만을 허용했습니다. 게릭과 루스는 함께 107개의 홈런을 기록했는데, 14개 팀의 팀 홈런이 이보다도 적었습니다. 게다가 아메리칸 리그 홈런, 득점 및 평균자책점 1~3위를 모두 양키스 선수들이 독식했습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카디널스와 자이언츠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월드 시리즈에서는 뉴욕 양키스에게 4전 전패로 물러났습니다. 파이리츠 외야수 폴 워너는 .380의 타율로 내셔널 리그 1위에 올랐고, 같은 팀의 피 트레이너와 로이드 워너 역시 타율 5위 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컵스의 투수 찰리 루트(26승 15패, 평균자책점 3.76, 145탈삼진)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카디널스의 투수 제시 헤인즈와 피트 알렉산더는 함께 45승을 기록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해리 헤일만은 타율 .398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에 등극했습니다.
1928, 뉴욕 양키스가 애슬레틱스를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3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오른 가운데, 세인트루이스는 자이언츠와 컵스를 따돌리고 내셔널 리그 왕좌에 올랐습니다. 이어진 월드 시리즈에서는 루 게릭과 베이브 루스가 도합 7개의 홈런을 기록한 끝에 양키스가 4연승으로 카디널스를 제압했습니다. 브라운스의 외야수 하이니 마누시(타율 .378, 13홈런, 108타점, 241안타)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지만, 타격왕은 워싱턴의 구스 고슬린(타율 .379, 17홈런, 102타점)에게 내주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레프티 그로브(24승 8패, 평균자책점 2.58, 183탈삼진)는 최고의 투수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로저스 혼스비가 .387의 타율로 내셔널 리그 타격왕에 오른 가운데 폴 워너와 프레디 린드스트롬 역시 .350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1929, 필라델피아는 104승을 거두며 2위 양키스를 18경기 차이로 앞서며 역사적인 3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애슬레틱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팀인 시카고 컵스를 4승 1패로 제압하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시카고는 4차전에서 8-0으로 앞섰지만, 막판에 10점을 내주며 코니 맥이 이끄는 필라델피아에게 역사적인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필리스의 외야수 레프티 오둘은 .398의 타율로 내셔널 리그 타격왕이 되었고, 클리블랜드의 루 폰세카(.369, 6홈런, 103타점, 19도루)는 알 시몬스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이 되었습니다. 시몬스는 타율, 홈런, 타점에서 모두 3위 안에 이름을 올렸고, 베이브 루스는 지난 12년 가운데 10번째 홈런왕에 등극했습니다. 애슬레틱스의 레프티 그로브와 조지 언쇼는 도합 44승을 기록하면서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모두 5위 안에 들었습니다. 컵스의 2루수 로저스 혼스비는 .380의 타율과 156득점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웠습니다. 뉴욕 양키스는 유니폼 뒷면에 번호를 달기 시작했는데, 몇 년 후에는 모든 팀이 등 번호를 달게 되었습니다.
1930, 1930년은 야구계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으로 가장 타격이 빛나던 시즌이었습니다. 7명의 타자가 .379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고 필라델피아의 레프티 그로브와 브루클린의 대지 밴스만이 3.00 미만의 평균자책점을 달성했습니다. 핵 윌슨(타율 .356, 56홈런, 191타점)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시즌 최다 타점 기록을 달성했고,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 척 클라인은 함께 .350 이상의 타율과 40홈런, 150타점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는 알 시몬스, 지미 폭스, 미키 코크레인의 방망이와 그로브, 조지 언쇼의 투구에 힘입어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한편 공식적으로 이 해의 최고의 선수 선정은 없었지만, Sporting News에서는 워싱턴의 유격수 조 크로닌과 자이언츠의 1루수 빌 테리를 각각 양 리그의 MVP로 선정했습니다.
1931, 1931년의 페넌트레이스는 다소 싱거웠습니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는 107승으로 3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역시 101승으로 손쉽게 내셔널 리그를 차지했습니다. 1930년의 대결을 재현한 월드 시리즈에서는 벌리 그라임스와 빌 할라한이 각각 2승을 거둔 끝에 카디널스가 4승 3패로 우승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투수 레프티 그로브(31승 4패, 평균자책점 2.06, 175탈삼진)는 아메리칸 리그 MVP에 선정되었고, 2년 연속 양대 리그 다승, 평균자책점 및 탈삼진 1위에 올랐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내야수 프랭키 프리쉬는 .311의 타율과 내셔널 리그 최다인 28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양키스의 루 게릭(타율 .341, 46홈런, 184타점, 17도루)과 베이브 루스(타율 .373, 46홈런, 163타점)는 무시무시한 시즌을 보낸 가운데 애슬레틱스의 중견수 알 시몬스는 .390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을 차지했습니다. 칙 해피, 짐 바텀리, 빌 테리는 내셔널 리그 타격왕 경쟁에서 거의 동률로 끝났는데, 해피가 간발의 차이로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1932, 베이브 루스, 루 게릭, 토니 라제리가 이끄는 뉴욕 양키스는 1,002득점을 달성하면서 13경기 차이로 애슬레틱스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22승 투수 론 워네케가 이끌던 시카고 컵스도 다시 한번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양키스와의 월드 시리즈에서는 4전 전패로 물러났습니다. 애슬레틱스의 강타자 지미 폭스(타율 .364, 58홈런, 169타점)는 루스의 단일 시즌 홈런 기록에 1개 차이로 미치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에 올랐습니다. 필리스의 외야수 척 클라인(타율 .348, 38홈런, 137타점, 20도루)은 내셔널 리그 홈런과 도루 1위에 오르며 MVP가 되었습니다.\n\n1932년의 기록과 순간:\n6월 3일, 루 게릭은 역사상 세 번째로 한 경기에 4개의 홈런을 친 선수가 되었습니다. 뉴욕 자이언츠를 30년간 이끌었던 존 맥그로 감독이 사임했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월드 시리즈 3차전 컵스의 투수 찰리 루트를 상대로 때린 '예고 홈런'은 야구 역사의 전설적인 획을 그었습니다.
1933, 워싱턴 세너터스는 4년 연속 90승 이상을 달성한 끝에 양키스와 애슬레틱스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워싱턴의 선수 겸 감독 조 크로닌은 .309의 타율에 118타점을 기록했고 외야수 하이니 마누시는 아메리칸 리그 2위인 .336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뉴욕 자이언츠는 컵스와 파이리츠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월드 시리즈에서는 4승 1패로 세너터스를 꺾고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자이언츠의 투수이자 내셔널 리그 MVP 칼 허벨은 정규 시즌에서는 23승에 평균자책점 1.66을 기록했고 월드 시리즈에서는 20이닝을 던지면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1933년은 두 리그에서 모두 트리플 크라운이 나온 유일한 시즌이었습니다. 필리스의 강타자 척 클라인은 타율 .368, 28홈런, 120타점으로 내셔널 리그를 호령했고, 아메리칸 리그 MVP 지미 폭스는 타율 .356, 48홈런, 163타점을 기록했습니다. 한편, 코니 맥 감독이 시즌 전 알 시몬스, 지미 다익스, 뮬 하스를 트레이드로 보내면서 몇 시즌 동안 아메리칸 리그에 군림하던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라인업이 해체되었습니다. 베이브 루스는 최초로 열린 올스타전에서 3회 홈런을 때리며 아메리칸 리그의 4-2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1934, 세인트루이스는 1934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타이거스를 11-0으로 꺾고 지난 9년 동안 3번째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가스 공장 갱단'이라 불린 카디널스의 주역은 1루수 리퍼 콜린스(타율 .333, 35홈런, 128타점)와 외야수 조 메드윅(타율 .319, 18홈런, 106타점), 그리고 내셔널 리그 MVP 디지 딘(30승 7패, 평균자책점 2.66, 195탈삼진)이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포수 미키 코크레인은 두 번째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했지만, 팀 동료인 찰리 게링거, 양키스의 스타인 레프티 고메스와 루 게릭의 성적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게릭(타율 .363, 49홈런, 165타점)은 아메리칸 리그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고, 고메스는 26승, 평균자책점 2.33, 탈삼진 158개로 리그를 이끌었습니다. 피츠버그의 외야수 폴 워너는 .362의 타율로 두 번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자이언츠의 멜 오트(타율 .326, 35홈런, 135타점)와 칼 허벨(21승 12패, 평균자책점 2.33) 역시 훌륭한 시즌을 보냈지만, 아쉽게도 뉴욕은 카디널스에 2경기 차이로 우승을 내주었습니다.
1935, 디트로이트는 역사상 최고의 공격력을 앞세워 뉴욕 양키스의 추격을 따돌리고 2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MVP 개비 하트넷(타율 .344, 13홈런, 91타점)과 강력한 투수진을 보유한 시카고 컵스는 100승을 거두고 월드 시리즈에서 타이거스와 만났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디트로이트가 선발 투수 토미 브리지스의 2승에 힘입어 컵스를 4승 2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행크 그린버그는 타율 .328, 36홈런, 170타점을 올리며 아메리칸 리그 MVP에 등극했습니다. 4위 레드삭스의 투수 웨스 페럴은 25승 14패를 거두면서 타석에서는 .347의 타율을 기록하고 7개의 홈런을 때렸습니다. 파이리츠의 유격수 아키 본은 23세의 나이로 .385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내셔널 리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5월 24일 신시내티의 크로슬리 필드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야간 경기가 열렸습니다.
1936, 1936년은 또 다른 양키스 왕조의 시작으로, 양키스는 1936년부터 1943년까지 8년 동안 6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이 시즌은 이후 전설이 되는 21세 중견수, 조 디마지오의 루키 시즌으로, 타율 .323에 29개의 홈런과 125타점을 기록했습니다. 디마지오와 베테랑 루 게릭, 빌 디키, 토니 라제리가 이끄는 타선은 총 1,065득점을 올렸습니다. 게릭은 타율 .354, 49홈런, 152타점, 167득점을 올리며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내셔널 리그에서는 뉴욕 자이언츠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월드 시리즈에서는 양키스의 강력한 타력 앞에 무너졌습니다. 자이언츠의 투수 칼 허벨은 26승과 평균자책점 2.31을 기록하면서 세인트루이스의 선발 투수 디지 딘을 제치고 MVP를 차지했습니다. 베이브 루스, 호너스 와그너, 크리스티 매튜슨, 월터 존슨, 타이 콥은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1937, 월드 시리즈에서 2년 연속으로 자이언츠와 양키스의 '지하철 시리즈'가 열렸고, 1936년과 마찬가지로 양키스의 브롱크스 폭격기가 자이언츠를 제압하고 2년 연속 정상에 올랐습니다. 투수 레프티 고메스와 레드 러핑은 이번에도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고, 타선은 리그 최다인 979득점을 올렸습니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빌 디키가 모두 환상적인 시즌을 보냈지만, 아메리칸 리그 MVP는 디트로이트의 2루수 찰리 게링거(타율 .371, 14홈런, 96타점, 133득점, 11도루)에게 돌아갔습니다. 내셔널 리그 우승팀인 자이언츠에서는 칼 허벨과 클리프 멜튼이 투수진을 이끈 가운데 외야수 멜 오트와 유격수 딕 바텔이 타선을 주도했습니다. 카디널스의 강타자 조 '더키' 메드윅(타율 .374, 31홈런, 154타점)은 내셔널 리그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1937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는 트리스 스피커와 냅 라조이가 헌액되었고, 경영자인 밴 존슨, 감독인 존 맥그로와 코니 맥도 헌액되었습니다.
1938, 뉴욕 양키스는 3년 연속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오르면서 왕조를 이어갔습니다. 시카고 컵스는 피츠버그를 2경기 차이로 제치고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올랐지만, 강력한 양키스의 상대가 되지는 못해 월드 시리즈에서는 4-0으로 끝났으며 4경기 점수 총합은 22- 9였습니다. 1938년 양키스는 5명의 타자가 20홈런과 90타점 이상을 기록했고, 7명의 선발 투수가 .380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했습니다. 투수 레드 러핑과 레프티 고메스는 함께 39승을 기록했고,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순위에서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습니다. 레드삭스의 강타자 지미 폭스는 타율(.349)과 타점(175) 1위에 오르고 홈런(50) 2위를 기록하면서 아메리칸 리그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1루수 행크 그린버그가 베이브 루스의 단일 시즌 홈런 기록에 2개 못 미친 58개의 홈런으로 양대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신시내티의 포수 어니 롬바르디(타율 .342, 19홈런, 95타점)는 내셔널 리그 타격왕과 MVP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듀오 조니 마이즈(타율 .337, 27홈런, 102타점)와 조 메드윅(타율 .322, 21홈런, 122타점)은 내셔널 리그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이들만으로는 카디널스가 5할 승률을 달성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n\n1938년의 기록과 순간:\n투수 피트 알렉산더, 야구의 개척자인 알렉산더 카트라이트와 헨리 채드윅이 1938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레즈의 좌완 투수 조니 밴더 미어는 6월 11일 브레이브스전, 6월 15일 다저스전에서 2경기 연속 노히터를 기록했습니다. 자이언츠 투수 칼 허벨은 6월 26일 통산 200승을 달성했습니다. 전체 도루 수가 급락하면서 단 두 명의 선수(프랭키 크로세티와 린 래리)만이 20개의 도루를 기록했습니다.
1939, 조 디마지오(타율 .381, 30홈런, 126타점)는 양키스의 106승과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이끌며 처음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신시내티는 세인트루이스를 4경기 반 차이로 따돌리고 20년 만에 첫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번 월드 시리즈에서도 양키스가 4전 전승을 거두며 신시내티 레즈를 꺾고 4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1939년 양키스는 오랫동안 역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로 거론되었습니다. 디마지오, 찰리 켈러, 조지 셀커크의 외야진은 모두 강력한 파워와 .450 이상의 출루율을 자랑했고, 포수 빌 디키와 2루수 조 고든이 이들을 뒷받침했습니다. 8명의 주전 타자가 두 자릿수의 홈런을 기록했고, 이 중 5명은 3할의 타율과 4할의 출루율을 기록했습니다. 레드 러핑(21승 7패, 평균자책점 2.93)과 레프티 고메스(12승 8패, 평균자책점 3.41)는 리그 최고의 투수진을 이끌었습니다. 신시내티 투수 버키 월터스는 27승과 평균자책점 2.29를 기록하고 타석에서도 .325의 맹타를 휘두르면서 내셔널 리그 MVP에 뽑혔습니다.\n\n1939년의 기록과 순간:\n루 게릭은 8경기에서 타율 .143에 그치고 근위축성측삭경화증 합병증으로 라인업에서 제외됐습니다. '철마'라 불리던 게릭은 결국 베이브 달그렌으로 교체되면서 그의 2,130경기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8월 26일에는 최초로 메이저 리그 경기가 TV로 중계되었습니다. 10명의 선수와 야구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이 명예의 전당에 추가로 헌액되었으며, 그중에는 게릭, 에디 콜린스, 조지 시슬러, 캡 앤슨이 포함되었습니다. 6월 12일에는 명예의 전당 박물관이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1940, 신시내티 레즈가 강력한 수비와 버키 월터스(22승 10패, 평균자책점 2.48), 폴 데린저(20승 12패, 평균자책점 3.06)라는 강력한 투수들을 앞세워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뉴욕이 마지막 주말까지 우승을 놓고 다투었습니다. 결국 디트로이트가 인디언스를 1경기, 다소 실망스러웠던 양키스를 2경기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승리한 3경기를 총합 22-6으로 압도했지만, 7경기를 패배하면서 결국 우승은 1919년 블랙삭스 시리즈 이후 처음 정상에 오른 신시내티 레즈에게 돌아갔습니다. 레즈의 1루수 프랭크 매코믹은 3년 연속 내셔널 리그 최다 안타를 기록하면서 .309의 타율과 19홈런, 127타점을 올린 끝에 MVP까지 차지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강타자 행크 그린버그(타율 .340, 41홈런, 150타점)는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하고 군에 입대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강속구 투수, 21세의 밥 펠러는 개막전에서 노히터를 달성한 데 이어 320이닝을 던지며 27승, 평균자책점 2.61, 261탈삼진을 기록하고 세 부문 모두 리그 1위에 올랐습니다. 카디널스의 1루수 조니 마이즈(타율 .314, 43홈런, 137타점)는 내셔널 리그 홈런과 타점 1위를 기록했지만, 2년 연속 MVP 2위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양키스의 중견수 조 디마지오(타율 .352, 31홈런, 133타점)는 시카고의 루크 애플링을 제치고 2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1941, 1941년 여름에는 야구 역사상 위대한 기록 두 가지가 탄생했습니다. 양키스의 중견수 조 디마지오는 5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메이저 리그 역사상 최장 기록인 56경기 연속 안타를 달성했습니다. '양키스의 범선' 디마지오는 .357의 타율, 30홈런, 125타점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에 등극했습니다. 22세의 테드 윌리엄스는 전설적인 시즌을 보내며 시즌 최후의 4할 타자가 되었습니다. 시즌 마지막 날 .400의 타율을 기록 중이던 윌리엄스는 마지막 더블헤더에서 8타수 6안타를 기록하고 .406의 타율로 시즌을 끝냈습니다. 페넌트레이스에서는 양키스가 쉽게 아메리칸 리그를 정복한 가운데 내셔널 리그에서는 세인트루이스와 브루클린이 접전을 벌였고, 다저스가 1920년 이후 처음으로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월드 시리즈에서는 양키스가 라이벌 다저스를 4승 1패로 제압하고 지난 6년 중 5번째의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외야수 돌프 카밀리(타율 .285, 34홈런, 120타점)는 브루클린의 팀 동료 피트 라이저와 위트 와이어트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MVP에 올랐습니다. 22세였던 라이저(타율 .343, 70장타, 117득점)는 풀타임 첫 시즌에 내셔널 리그 타격왕이 되었습니다.\n\n1941년의 기록과 순간:\n멜 오트는 6월 1일 신시내티를 상대로 통산 400홈런과 1,500타점 고지를 밟았습니다. 테드 윌리엄스는 9회 클로드 파소를 상대로 3점 홈런을 때리며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전에서의 7-5 승리를 견인했습니다. 레드삭스의 레프티 그로브는 7월에 통산 300승을 달성했습니다.
1942, 세 팀이 100승 이상을 달성한 가운데 103승의 다저스가 우승에 실패했고, 양키스와 카디널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만났습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1~2차전에서 두 팀은 1승 1패를 기록했지만, 양키 스타디움에서 카디널스가 3연승을 거두며 1942년 월드 시리즈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화이티 쿠로브스키가 2-2로 팽팽하던 5차전 9회에 2점 홈런을 때리며 승부를 결정지었습니다. 카디널스의 선발 투수 모트 쿠퍼(22승 7패, 평균자책점 1.78, 152탈삼진)는 팀 동료 에노스 슬로터와 뉴욕의 멜 오트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테드 윌리엄스(타율 .356, 36홈런, 137타점, 141득점)는 아메리칸 리그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지만, MVP는 양키스의 2루수 조 고든에게 돌아갔습니다.\n\n1942년의 기록과 순간:\n로저스 혼스비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외야수 폴 워너는 6월에 3,000안타 고지를 밟았습니다. 양키스의 강타자 루 게릭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 "야구왕 루 게릭"이 1942년에 개봉했습니다.
1943, 많은 스타가 군에 입대하면서 메이저 리그 역시 전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스탠 뮤지얼과 루크 애플링처럼 얼마 남지 않은 스타들이 좋은 성적을 올렸습니다. 양키스와 카디널스가 서로 손쉽게 각 리그를 정복한 다음 월드 시리즈에서 다시 만났고, 이번에는 뉴욕 양키스가 5경기 동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단 9점으로 막아내면서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MVP 스퍼드 챈들러(20승 4패, 평균자책점 1.64)는 월드 시리즈에서 두 번의 완투승을 기록했습니다. 22세의 뮤지얼은 .357의 타율과 81장타, 108득점으로 첫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루디 요크는 34개의 홈런을 치며 31개를 때린 양키스의 찰리 켈러를 가까스로 제치고 양대 리그 홈런왕이 되었습니다. 1943년에는 이 둘을 포함한 4명의 선수만이 2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1944,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건강한 선수들은 대부분 군에 차출되었습니다. 경기는 징병 유예자, 십 대 청소년, 그리고 복무하기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때를 틈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가 타이거스를 1경기 차이로 제치고 처음으로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내셔널 리그에서는 스탠 뮤지얼, 조니 호프, 그리고 리그 MVP 마티 매리언이 이끄는 카디널스가 105승으로 쉽게 우승을 차지하면서 월드 시리즈는 세인트루이스에서만 열리게 되었습니다. 카디널스는 6차전 끝에 브라운스를 제압하면서 지난 3년 중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브라운스에서는 유격수 번 스티븐스(타율 .293, 20홈런, 109타점)와 투수 넬스 포터, 잭 크레이머가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MVP 투표에서는 디트로이트의 선발 투수 할 뉴하우저(29승 9패, 평균자책점 2.22)와 디지 트라웃(27승 14패, 평균자책점 2.12)이 스티븐스를 누르고 각각 1, 2위를 차지했습니다. 브루클린의 딕시 워커(타율 .357, 13홈런, 91타점)가 10리 차이로 뮤지얼을 제치고 내셔널 리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조 넉스홀은 16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메이저 리그에 데뷔한 역대 최연소 선수가 되었습니다.
1945, 전쟁 마지막 해였던 194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특급 좌완 투수 할 뉴하우저와 행크 그린버그의 타격을 앞세워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왕자' 뉴하우저는 메이저 리그 최다인 25승, 평균자책점 1.81, 212탈삼진을 기록하고 2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투수들이 득세했는데, 브라운스의 유격수 번 스티븐스만이 20홈런을 기록했고, 양키스의 스너피 스턴웨이스는 .309의 타율로 타격왕이 되었습니다. 스탠 핵, 앤디 파프코, 그리고 내셔널 리그 MVP 필 카바레타가 시카고 컵스의 98승을 견인하며 내셔널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1945년 월드 시리즈 이후 컵스는 40년 가까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게 됩니다.\n\n1945년의 기록과 순간:\n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는 외팔이 외야수 피트 그레이와 계약했습니다. 그레이는 77경기에서 .218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멜 오트는 8월에 500홈런을 달성했습니다. 19세기 야구인 킹 켈리, 댄 브루서스, 에드 델라한티가 1945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1946,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테드 윌리엄스의 활약 속에 보스턴은 104승을 거두고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화려한 파편' 윌리엄스는 타율 .342, 38홈런, 123타점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브루클린과 세인트루이스는 시즌 내내 접전을 벌였고 96승 동률로 시즌을 끝냈습니다. 결국 3전 2승 플레이오프가 열렸고, 카디널스가 승리하면서 레드삭스를 만났습니다. 월드 시리즈는 치열한 명승부였는데, 7차전 8회 말 해리 워커의 2루타로 1루에 있던 에노스 슬로터가 홈에 들어오면서 카디널스가 4-3으로 승리했습니다. 이로써 카디널스는 1940년대 들어 3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MVP 스탠 뮤지얼(타율 .365, 16홈런, 103타점)과 슬로터(타율 .300, 18홈런, 130타점)가 카디널스의 공격을 이끈 가운데 하위 폴렛은 리그 최다인 21승과 평균자책점 2.10을 기록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투수 할 뉴하우저(26승 9패, 평균자책점 1.94, 275탈삼진)와 클리블랜드의 밥 펠러(26승 15패, 평균자책점 2.18, 348탈삼진)가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고, 타이거스의 1루수 행크 그린버그는 아메리칸 리그 홈런(44)과 타점(127) 1위에 올랐습니다. 워싱턴의 1루수 미키 버논은 .353의 타율로 첫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1947, 브랜치 리키와 다저스는 2시즌을 마이너 리그에서 보낸 내야수 재키 로빈슨을 1루수로 출전시켰고, 이는 야구계 인종 통합의 시작이었습니다. 로빈슨의 활약 속에 브루클린은 세인트루이스를 5경기 차이로 따돌리고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어 7월에는 또 다른 흑인 선수 래리 도비가 클리블랜드에서 데뷔했습니다. 양키스는 전쟁 후 처음으로 리그 우승에 성공했고, 7차전 접전 끝에 월드 시리즈 우승도 차지했습니다. 4차전에서는 다저스의 대타 쿠키 라바제토가 노히터를 깨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테드 윌리엄스(타율 .343, 32홈런, 114타점)가 아메리칸 리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지만, MVP 투표에서는 단 1표 차이로 양키스의 조 디마지오가 선정되었습니다. 브레이브스의 3루수 밥 엘리엇(타율 .317, 22홈런, 113타점)은 보스턴에서 보낸 첫 시즌에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n\n1947년의 기록과 순간:\n미키 코크레인, 프랭키 프리쉬, 레프티 그로브, 칼 허벨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로빈슨(타율 .297, 12홈런, 125득점, 29도루)은 메이저 리그 첫 번째 올해의 신인을 수상했습니다. 레즈의 투수 이웰 블랙웰은 내셔널 리그 다승(22)과 탈삼진(193) 1위를 차지했지만, 평균자책점(2.47)에서는 워렌 스판에게 밀렸습니다. 클리블랜드의 밥 펠러는 전쟁으로 단축된 커리어 통산 5번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에 등극했습니다.
1948,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뉴욕, 보스턴, 클리블랜드가 시즌 마지막 날까지 우승을 놓고 치열한 사투를 벌였습니다. 시즌 마지막 주말, 레드삭스가 양키스에 2승을 거두며 우승을 놓고 인디언스와의 단판 플레이오프가 성사되었습니다. 그리고 루키 너클볼 투수 진 비어든을 선발로 내세운 인디언스가 레드삭스를 8-3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4승 투수 조니 세인을 앞세운 보스턴 브레이브스는 다저스와 카디널스, 파이리츠를 모두 쉽게 따돌리고 월드 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와 만났습니다. 투수 밥 레몬과 비어든을 앞세운 인디언스가 6차전 만에 브레이브스를 제압하고 28시즌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유격수 루 부드로는 타율 .355, 18홈런, 106타점, 116득점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에 올랐고, 스탠 뮤지얼(타율 .376, 39홈런, 131타점, 135득점)은 세인과 올해의 신인 앨빈 다크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레드삭스의 외야수 테드 윌리엄스는 .369의 타율로 타격왕에 올랐고, 양키스의 외야수 조 디마지오는 리그 최다인 39개의 홈런과 155타점을 기록했습니다. 조니 마이즈와 랄프 카이너는 내셔널 리그에서 각각 40개의 홈런을 때렸습니다.\n\n1948년의 기록과 순간:\n피 트레이너와 허브 페녹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6월에는 베이브 루스의 등 번호 3번이 양키스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선발 투수 밥 레몬은 6월 30일 노히터를 달성했고, 1948년 시즌에만 10번의 완봉승을 기록했습니다. 케이시 스탱걸은 시즌 종료 후 양키스의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1949, 레드삭스와 양키스는 여름 내내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두고 다투었고, 결국 뉴욕이 최종전에서 보스턴에게 2승을 거두고 월드 시리즈에 복귀했습니다. 브루클린은 막판에 부진했던 카디널스를 밀어내고 1경기 차이로 내셔널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월드 시리즈에서 다저스는 양키스의 투수들에게 꽁꽁 묶였고, 결국 5차전 만에 양키스가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테드 윌리엄스(타율 .343, 43홈런, 159타점, 150득점)는 타율에서 소수점 차이로 밀리며 세 번째 아메리칸 리그 트리플 크라운을 놓쳤지만, 대신 MVP로 선정되었습니다. 다저스의 내야수 재키 로빈슨은 내셔널 리그 타율과 도루 1위에 오르며 메이저 리그 입성 후 2년 만에 MVP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워싱턴의 로이 시버스(타율 .306, 16홈런, 91타점)와 브루클린의 돈 뉴컴(17승 8패, 평균자책점 3.17)이 각각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n\n1949년의 기록과 순간:\n보스턴의 중견수 돔 디마지오는 8월 9일 마지막 타석에서 친 공이 형인 조 디마지오에게 잡히면서 34경기 연속 안타 기록이 중단되었습니다. 피츠버그의 외야수 랄프 카이너는 9월 13일 필리스를 상대로 4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찰리 게링거, '쓰리 핑거' 브라운, 키드 니콜스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1950,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돌풍을 일으키며 브루클린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연장 승부 끝에 4- 1로 승리하고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4개 팀이 90승 이상을 달성한 가운데 뉴욕 양키스가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보스턴을 누르고 2년 연속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양키스는 필리스를 상대로 4전 전승을 기록하며 13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양키스의 유격수 필 리주토(타율 .324, 출루율 .418, 125득점)가 아메리칸 리그 MVP를, 필리스의 계투 요원 짐 콘스탄티(16승 7패, 22세이브, 평균자책점 2.66)가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보스턴의 1루수 월트 드로포는 아메리칸 리그 최다인 144타점을 기록하며 양키스의 좌완 투수 화이티 포드를 제치고 가뿐히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카디널스의 스탠 뮤지얼은 .346의 타율로 4번째 타격왕에 등극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밥 레몬은 아메리칸 리그 다승(23)과 탈삼진(170) 1위를 기록했고, 팀 동료 얼리 윈과 밥 펠러는 각각 평균자책점 1위와 3위에 올랐습니다. 브레이브스의 워렌 스판(21승 17패, 평균자책점 3.16, 191탈삼진)과 조니 세인(20승 13패, 평균자책점 3.94)은 내셔널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투수 콤비였습니다.
1951, 뉴욕 양키스가 5경기 차이로 클리블랜드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한편 내셔널 리그에서는 다저스가 8월 전까지 13경기 차이로 선두를 달렸지만, 자이언츠가 16연승을 질주하며 시즌 마지막 주에 브루클린을 따라잡았습니다. 결국 두 팀은 96승 동점으로 시즌을 끝냈습니다. 이후 열린 3전 2승제 플레이오프 3차전, 9회까지 4-2로 뒤지던 자이언츠는 외야수 바비 톰슨의 3점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하며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이 홈런은 '세상에 울려 퍼진 한 방'으로 기록됩니다. 극적으로 리그 우승에는 성공했지만, 자이언츠는 월드 시리즈에서 2승 4패로 물러났고, 양키스가 3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양키스의 주역은 빅 라스키, 에디 로팟, 앨리 레이놀즈 같은 노장 투수와 리그 MVP 요기 베라, 조 디마지오였습니다. 자이언츠에서는 23승 투수 샐 매글리와 래리 잰슨, 외야수 몬테 어빈, 윌리 메이스, 바비 톰슨이 활약했습니다. 브루클린의 포수 로이 캄파넬라(타율 .325, 33홈런, 108타점)는 카디널스의 스탠 뮤지얼을 제치고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n\n1951년의 기록과 순간:\n지미 폭스와 멜 오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밥 펠러는 7월 1일 타이거스를 상대로 통산 3번째 노히터를 달성했습니다. 브라운스의 구단주 빌 빅은 비밀리에 신장 109cm의 에디 개델을 영입했고, 8월 19일 더블헤더 두 번째 경기에 1번 타자로 투입했습니다. 개델은 볼넷을 얻어냈고, 곧바로 대주자로 교체되었습니다.
1952, 뉴욕과 클리블랜드가 마지막까지 우승을 놓고 다툰 끝에 양키스가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내셔널 리그에서는 브루클린이 자이언츠를 4경기 반 차이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 양키스는 조니 마이즈, 요기 베라, 미키 맨틀이 도합 7개의 홈런을 성공시키며 6차전과 7차전에서 승리하면서 4연패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챔피언 양키스의 주축은 20승 투수 앨리 레이놀즈와 요기 베라, 그리고 오클라호마 출신의 20세 외야수 미키 맨틀이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선발진인 얼리 윈, 마이크 가르시아, 밥 레몬, 밥 펠러 가운데 3명이 20승을 거두었고, 중견수 래리 도비와 1루수 루크 이스터는 각각 아메리칸 리그 홈런 1, 2위를 차지했습니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투수 바비 섄츠(24승 7패, 평균자책점 2.48)는 아메리칸 리그 다승 1위를 기록하면서 MVP까지 수상했습니다. 피츠버그의 외야수 랄프 카이너는 7년 연속 내셔널 리그 홈런왕에 올랐습니다. 브루클린의 구원 투수 조 블랙이 15승과 15세이브를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시카고 컵스의 외야수 행크 사우어(타율 .270, 37홈런, 121타점)는 블랙과 28승 투수 로빈 로버츠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1953, 브루클린은 105승을 거두며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올랐고, 양키스는 손쉽게 아메리칸 리그 5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양키스는 2년 연속 월드 시리즈에서 자이언츠를 물리쳤고, 7년간 6회 우승을 기록하며 왕조를 세웠습니다. 클리블랜드의 3루수 알 로센(타율 .336, 43홈런, 145타점)은 타율에서 간발의 차로 밀리며 트리플 크라운은 놓쳤지만,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다저스의 포수 로이 캄파넬라는 .312의 타율과 41홈런, 142타점으로 두 번째 내셔널 리그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밀워키의 워렌 스판과 필리스의 로빈 로버츠는 각각 23승을 거두며 전체 다승 1위를 기록했습니다.\n\n1953년의 기록과 순간:\n디지 딘과 알 시몬스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브라운스의 투수 보보 홀로먼은 5월 6일 메이저 리그 데뷔전에서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노히터를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홀로먼은 통산 3승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하비 쿠엔은 209개의 안타를 때려내면서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에 뽑혔고, 브루클린의 2루수 짐 길리엄은 타율 .278, 125득점, 21도루로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습니다. 1953 시즌이 끝나고 빌 빅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를 매각했고, 팀은 1954년 시즌에 볼티모어로 연고지를 옮겼습니다.
1954, 3년 연속 2위에 머물렀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111승을 거두며 아메리칸 리그 정상을 탈환했습니다. 23승 투수인 얼리 윈과 밥 레몬, 중견수 래리 도비(타율 .272, 32홈런, 126타점), 타격왕 바비 아빌라의 활약이 컸습니다. 뉴욕 자이언츠는 다저스와 브레이브스를 누르고 내셔널 리그 우승을 달성한 다음 월드 시리즈에서 4전 전승으로 인디언스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윌리 메이스는 타율 .345, 41홈런과 110타점으로 첫 MVP를 수상했습니다. 조니 안토넬리는 21승, 평균자책점 2.30으로 자이언츠의 투수진을 이끌었습니다. 2위 양키스의 포수 요기 베라(타율 .307, 22홈런, 125타점)는 두 번째 MVP에 올랐습니다. 신시내티의 테드 클루스제프스키는 양 리그에서 가장 많은 49개의 홈런과 141타점을 기록했습니다.\n\n1954년의 기록과 순간:\n세인트루이스에서 연고지를 옮기고 첫 시즌을 맞이한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100패를 기록했습니다. 행크 애런은 4월 23일, 자신의 첫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브레이브스의 1루수 조 애드콕은 7월 31일 다저스를 상대로 4개의 홈런을 쳤습니다. 월드 시리즈 1차전 8회, 윌리 메이스는 머리 위로 넘어가는 빅 워츠의 타구를 잡아냈습니다. 2-2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이언츠의 연장전 승리로 이어진 야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수비였습니다. 빌 디키, 래빗 마란빌, 빌 테리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1955, 선발 투수 조니 포드레스는 7차전에서 양키스를 상대로 2-0 완봉승을 거두었고, 다저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다섯 번 만나 모두 패했던 상대, 양키스에게 복수에 성공했습니다. 이 우승은 브루클린에서의 유일한 월드 시리즈 우승이었습니다. 브루클린에는 각각 25홈런과 95타점 이상을 기록한 포수 로이 캄파넬라, 1루수 길 호지스, 중견수 듀크 스나이더, 우익수 칼 푸릴로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캄파넬라(타율 .318, 32홈런, 107타점)는 스나이더와 시카고의 어니 뱅크스를 제치고 지난 5년간 세 번째의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요기 베라는 타율 .272, 27홈런, 108타점으로 2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MVP에 등극했습니다. 20세의 타이거스 외야수 알 칼라인은 아메리칸 리그 최다인 200안타와 .340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역사상 최연소 타격왕이 되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2위 인디언스의 강속구 투수 허브 스코어는 16승과 2.85의 평균자책점, 그리고 리그 최다인 245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5할 승률에 그친 필라델피아의 투수 로빈 로버츠는 양대 리그 최다인 23승을 거두며 6년 연속 20승 고지에 올랐습니다. 자이언츠의 외야수 윌리 메이스는 51개의 홈런을 때리면서 50홈런의 고지를 밟은 11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1955년에는 6명의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는데, 양키스의 위대한 조 디마지오, 포수 개비 하트넷, 3루수 프랭크 '홈런' 베이커가 포함되었습니다.
1956, 트리플 크라운 수상자 미키 맨틀과 평균자책점 1위 화이티 포드가 이끄는 뉴욕 양키스가 다시금 왕좌에 올랐습니다. 아메리칸 리그에서 클리블랜드를 9경기 차이로 따돌린 양키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7차전 승부 끝에 라이벌 다저스를 누르고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양키스의 투수 돈 라슨은 5차전에서 월드 시리즈 사상 유일한 노히터이자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고, 이 활약 덕분에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했습니다. 브루클린에서는 내셔널 리그 MVP이자 사이 영 상 수상자 돈 뉴컴(27승 7패, 평균자책점 3.06)과 중견수 듀크 스나이더(타율 .292, 43홈런, 101타점)가 활약했습니다. 20세의 신시내티 외야수 프랭크 로빈슨은 .290의 타율과 38개의 홈런, 그리고 리그 최다인 122타점으로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습니다. 시카고의 유격수 루이스 아파리시오는 .266의 타율과 리그 최다인 21개의 도루로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이 되었습니다.\n\n1956년의 기록과 순간:\n행크 그린버그와 조 크로닌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1956년에는 처음으로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 영 상이 탄생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투수들이 7월 말부터 8월 초에 있었던 12경기에서 일곱 번의 완봉승을 기록했습니다.
1957, 외야수 행크 애런, 3루수 에디 매튜스, 그리고 우수한 선발 투수 3명을 보유한 브레이브스가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양키스를 꺾고 40년 이상 기다려온 우승이자 밀워키에서의 유일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월드 시리즈 MVP 루 버뎃은 5차전과 7차전 완봉승을 포함해 월드 시리즈에서만 3승을 거두었습니다. 애런은 내셔널 리그 홈런(44)과 타점(132) 1위를 차지하며 스탠 뮤지얼과 레드 쇼엔디스트를 제치고 MVP를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팀 동료 워렌 스판(21승 11패, 평균자책점 2.69)은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뉴욕의 중견수 미키 맨틀(타율 .365, 34홈런, 94타점, 121득점, 16도루)은 접전 끝에 테드 윌리엄스, 로이 시버스, 넬리 폭스를 따돌리고 2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39세의 윌리엄스가 다시 한번 4할에 근접한 타율로 시즌을 끝냈습니다. 그는 .388의 타율을 기록하며 다섯 번째 타격왕을 차지했습니다. 필리스의 투수 잭 샌포드는 19승과 평균자책점 3.08, 그리고 리그 최다인 188탈삼진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58,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브루클린과 뉴욕을 떠나 캘리포니아에 새 연고지를 두면서 야구에서도 서부 개척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밀워키와 양키스는 2년 연속으로 양 리그의 왕좌를 지켜냈습니다. 4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한 양키스는 1승 3패로 뒤진 상태에서 내리 3연승을 거두면서 지난해 브레이브스에 당한 패배를 설욕하고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뉴욕의 밥 털리(21승 7패, 평균자책점 2.97, 168탈삼진)는 밀워키의 좌완 투수 워렌 스판(22승 11패, 평균자책점 3.07, 150탈삼진)을 제치고 1958년 사이 영 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보스턴의 외야수 재키 젠슨(타율 .286, 35홈런, 122타점)은 털리와 클리블랜드의 외야수 록키 콜라비토(타율 .303, 41홈런, 113타점)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컵스의 유격수 어니 뱅크스는 타율 .313, 47홈런, 129타점으로 내셔널 리그 MVP에 올랐습니다.\n\n1958년의 기록과 순간:\n브루클린의 포수 로이 캄파넬라가 1월에 자동차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카디널스의 전설 스탠 뮤지얼은 5월 13일 3,000안타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올스타전에서는 아메리칸 리그가 4-3으로 내셔널 리그를 꺾었는데, 장타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첫 경기였습니다. 보스턴의 테드 윌리엄스는 40세 생일을 맞이하면서 6번째이자 생애 마지막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외야수 올랜도 세페다(타율 .312, 25홈런, 96타점, 15도루)는 만장일치로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습니다.
1959,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클리블랜드를 5경기 차이로 따돌리고 1919년 블랙삭스 스캔들 이후 처음으로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놀랍게도 뉴욕 양키스는 화이트삭스에 15경기 차이로 뒤진 것은 물론 1925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LA와 밀워키는 나란히 86승 70패로 내셔널 리그 공동 선두에 올랐습니다. 이후 다저스는 3전 2승제 플레이오프에서 두 번의 1점 차 승리 끝에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어진 월드 시리즈에서 4승 2패로 화이트삭스에 승리했습니다. 컵스의 유격수 어니 뱅크스는 .304의 타율과 45홈런, 143타점으로 2년 연속 내셔널 리그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MVP에서는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1위부터 3위까지 독식했는데, 2루수 넬리 폭스(타율 .306, 70타점, 84득점)가 유격수 루이스 아파리시오(타율 .257, 98득점, 56도루), 선발 투수 얼리 윈(22승 10패, 평균자책점 3.17)을 누르고 그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반면 윈은 손쉽게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n\n1959년의 기록과 순간:\n5월 26일, 피츠버그의 투수 하비 해딕스는 13회초 밀워키의 선두 타자인 펠릭스 만티야가 실책으로 출루할 때까지 36명의 타자를 범타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조 애드콕에게 홈런을 맞고 경기에서 패했습니다. 1959 시즌 종료 이후 리그 간 트레이드에 대한 웨이버 제한이 완화되면서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팀 사이의 트레이드가 가능해졌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1루수 윌리 매커비는 단 192타석에서 타율 .354와 13홈런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올해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워싱턴의 외야수 밥 앨리슨(타율 .261, 30홈런, 85타점)이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60, 양키스는 15연승으로 정규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볼티모어와 8경기 차이로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0년 이상 하위권을 전전하던 피츠버그는 30년의 부진을 딛고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명승부가 펼쳐졌던 월드 시리즈 7차전 9회 말 동점 상황, 피츠버그의 선두 타자, 2루수 빌 마제로스키의 끝내기 홈런으로 파이리츠가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정규 시즌에서 파이리츠의 영웅은 내셔널 리그 타격왕이자 MVP인 딕 그로트와 사이 영 상 수상자 번 로우(20승 9패, 평균자책점 3.08)였습니다. 양키스의 우익수 로저 매리스는 팀 동료인 미키 맨틀, 볼티모어의 브룩스 로빈슨과의 치열한 MVP 경쟁에서 승리했습니다.\n\n1960년의 기록과 순간:\n화이트삭스의 구단주이자 혁신가였던 빌 빅은 시카고의 원정 유니폼 등 번호 위에 선수의 이름을 추가했습니다. 시즌 시작 전, 클리블랜드의 단장 프랭크 레인은 홈런왕 록키 콜라비토와 젊은 내야수 놈 캐시를 디트로이트로 보내고 타격왕 하비 쿠엔과 3루수 스티브 디미터를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는데, 이후 인디언스는 오랜 암흑기를 겪고 맙니다. 양키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승리한 3경기에서 피츠버그를 총합 38-3으로 압도했습니다. 다저스의 외야수 프랭크 하워드(타율 .268, 23홈런, 77타점)가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61, 야구의 확장과 M&M의 등장\n\n1961 시즌과 함께 아메리칸 리그에 2개 팀이 추가되고 경기 수도 8경기가 늘어나면서 처음으로 162경기 시즌이 열렸습니다. 시즌 전 캘빈 그리피스가 세너터스의 연고지를 미네소타로 옮기면서 새로운 프랜차이즈는 LA와 워싱턴에 터를 잡았습니다. 뉴욕 양키스는 109승을 달성하면서 두 번째로 5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외야수 미키 맨틀과 로저 매리스가 각각 베이브 루스의 단일 시즌 홈런 기록인 60홈런에 도전하면서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맨틀은 부상으로 루스의 기록에 미치지 못했지만, 매리스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61호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34세의 나이로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매리스는 동료 맨틀을 제치고 2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MVP에 등극했습니다. 신시내티는 내셔널 리그 MVP 프랭크 로빈슨(타율 .323, 37홈런, 124타점, 22도루)과 좋은 투수진을 등에 업고 내셔널 리그 정상을 밟았지만, 월드 시리즈에서는 5차전 만에 양키스에게 패했습니다. 양키스의 좌완 투수 화이티 포드(25승 4패, 평균자책점 3.21)는 사이 영 상을 받았고, 월드 시리즈 29 1/3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월드 시리즈 MVP에도 선정되었습니다. 컵스의 외야수 빌리 윌리엄스(타율. 278, 25홈런, 86타점)는 밀워키의 포수 조 토레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을 수상했습니다.
1962, 뉴욕 메츠와 휴스턴 콜트 포티파이브스의 합류로 내셔널 리그도 10개 팀이 되었습니다. 1962년의 메츠는 첫 시즌에 단 40승에 그치며 야구 역사상 최악의 팀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내셔널 리그에서는 9월까지 자이언츠, 다저스, 레즈가 모두 우승에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LA와 샌프란시스코가 101승으로 시즌을 마쳤고, 3전 2승제 플레이오프 끝에 자이언츠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뉴욕 양키스는 아메리칸 리그를 정복한 후 월드 시리즈에서도 7차전 승부 끝에 자이언츠를 꺾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월드 시리즈 MVP 랄프 테리는 최종전에서 1-0 완봉승을 기록했고, 윌리 매커비는 두 명의 주자를 두고 직선타로 물러났습니다. 미키 맨틀(타율 .321, 30홈런, 89타점)은 40경기 가까이 결장했음에도 세 번째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다저스의 유격수 모리 윌스는 현대 야구 역사상 최초로 100도루의 벽을 깨면서 자이언츠의 중견수 윌리 메이스(타율 .304, 49홈런, 141타점, 18도루)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MVP에 올랐습니다. 돈 드라이스데일은 25승 9패, 평균자책점 2.83, 232탈삼진의 기록으로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n\n1962년의 기록과 순간:\n재키 로빈슨, 밥 펠러, 에드 로쉬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4월에 어니 뱅크스는 300홈런 고지를 밟았습니다. 양키스의 유격수 톰 트레시는 타율 .286, 20홈런, 93타점으로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63, 다저스는 1963년 월드 시리즈에서 라이벌 양키스를 4전 전승으로 물리쳤습니다. 월드 시리즈 MVP 샌디 쿠팩스는 두 번의 완투승을 거두며 23명의 뉴욕 양키스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웠습니다. 쿠팩스는 또한 사이 영 상과 내셔널 리그 MVP에도 선정되었는데, 다승(25), 평균자책점(1.88), 탈삼진(306), 완봉(11)에서 모두 양대 리그 전체 1위를 기록했습니다. 1963 시즌 들어 스트라이크 존이 확대되면서 공격력은 급감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전체의 타율은 .245에 그쳤고, 최하위 메츠는 .219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성적을 거둔 타자들이 있었습니다. 미네소타의 하먼 킬러브루는 양대 리그 1위인 45홈런을 기록했고, 팀 동료인 밥 앨리슨과 지미 홀은 3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렸습니다. 윌리 매커비와 행크 애런은 44홈런으로 내셔널 리그 홈런왕이 되었고, 윌리 메이스와 올랜도 세페다는 맥코비와 함께 34홈런 이상을 기록한 자이언츠 타자가 되었습니다. 레즈의 피트 로즈는 170안타, 101득점으로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습니다.\n\n1963년의 기록과 순간:\n듀크 스나이더가 6월 14일 통산 400홈런을 달성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투수 얼리 윈이 7월 13일 마지막 경기에서 300승을 거두었습니다. 밀워키의 좌완 투수 워렌 스판은 42세의 나이로 23승을 거두며 통산 13번째이자 마지막 20승 시즌을 달성했습니다. 화이트삭스의 투수 게리 피터스는 아메리칸 리그 평균 자책점 1위(2.33)를 달성하고 19승을 거두면서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습니다.
1964, 두 리그 모두에서 치열한 우승 경쟁이 펼쳐졌습니다. 99승을 거둔 뉴욕 양키스는 화이트삭스를 1경기 그리고 오리올스를 2경기 차이로 따돌렸습니다. 한편 세인트루이스는 시즌 마지막 날 필리스, 레즈, 자이언츠를 제쳤습니다. 이 접전은 9월 말부터 시작된 필라델피아의 10연패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카디널스는 1964년 월드 시리즈에서 7차전 끝에 양키스를 꺾었습니다. 팀은 5위에 그쳤지만, 에인절스의 투수 딘 챈스가 아메리칸 리그 최다인 20승과 평균자책점 1.65로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볼티모어의 3루수 브룩스 로빈슨은 .317의 타율, 28홈런, 118타점, 그리고 골드 글러브에 선정될 정도의 빼어난 수비로 아메리칸 리그 MVP까지 차지했습니다. 1964년은 루키들이 좋은 활약을 펼쳤는데,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 토니 올리바는 득점, 안타, 2루타, 타율 1위에 올랐고, 토니 코니글리아로(타율 .290, 24홈런), 루이스 티안트(10승 4패, 평균자책점 2.83), 멜 스토틀마이어(9승 3패, 평균자책점 2.06)도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렀습니다. 필라델피아의 3루수 딕 앨런(타율 .318, 29홈런, 91타점, 125득점)은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습니다.\n\n1964년의 기록과 순간:\n필라델피아의 짐 버닝은 6월 21일 아버지의 날에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면서 2타점까지 올렸습니다. 필리스의 외야수 조니 캘리슨은 올스타전 9회에 3점 홈런을 때리면서 내셔널 리그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1964 시즌 이후 휴스턴은 팀 이름을 애스트로스로 바꾸고 실내 구장인 애스트로돔으로 구장을 옮겼습니다. 
1965, 샌디 쿠팩스는 나흘 동안 2경기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고, LA 다저스는 시즌 마지막 주말에 라이벌 자이언츠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오른 데 이어 월드 시리즈까지 우승했습니다. 이 활약으로 쿠팩스는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했음은 물론, 양대 리그 최다인 26승, 평균자책점 2.04, 382탈삼진으로 사이 영 상까지 획득했습니다. 트윈스는 아메리칸 리그 MVP인 유격수 조일로 베르사예스(타율 .273, 19홈런, 77타점, 126득점, 27도루)와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 4명을 필두로 하는 강력한 타격으로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자이언츠의 중견수 윌리 메이스(타율 .317, 52홈런, 112타점)는 다저스의 쿠팩스와 모리 윌스를 밀어내고 두 번째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아메리칸 리그 5위에 그쳤지만 '깜짝 샘' 맥다월은 리그 최다인 평균자책점 2.18과 325탈삼진을 기록하며 17승을 거두었습니다.\n\n1965년의 기록과 순간:\n아마추어 드래프트가 196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전체 1번으로 릭 먼데이를 선택했습니다. 쿠팩스는 9월 9일, 자신의 네 번째 노히터이자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습니다. 메이스는 9월 13일에 통산 500홈런 고지를 밟았습니다. 볼티모어의 외야수 커트 블레퍼리(타율 .260, 22홈런, 70타점)가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66, 아메리칸 리그 MVP이자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 프랭크 로빈슨은 볼티모어의 프랜차이즈 역사상 첫 월드 시리즈 진출을 이끌었고, LA 다저스를 상대로 한 월드 시리즈에서는 4전 전승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다저스의 좌완 투수 샌디 쿠팩스는 시즌 내내 관절염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을 겪으면서도 양대 리그 최다인 27승, 평균자책점 1.73, 317탈삼진으로 지난 4년간 3번째 사이 영 상 수상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왼팔 관절 부상으로 인해 쿠팩스는 시즌 종료 후 전성기의 위치에서 은퇴했습니다. 파이리츠의 외야수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6년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면서 타율 .317, 29홈런, 119타점으로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화이트삭스의 중견수 토미 에이지(타율 .273, 22홈런, 86타점, 44도루)는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n\n1966년의 기록과 순간:\n테드 윌리엄스와 케이시 스탱걸이 1966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다저스의 쿠팩스와 돈 드라이스데일은 100만 달러 계약을 요구하며 스프링 트레이닝 합류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두 선수는 3월 말에 10만 달러 이상의 연봉으로 계약했습니다. 밀워키 브레이브스가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옮겼습니다.
1967, 1967년 아메리칸 리그에서 역사상 가장 치열한 우승 경쟁이 펼쳐졌습니다.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보스턴, 디트로이트, 미네소타가 반 경기 차이 내에서 우승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보스턴이 트윈스를 제압한 가운데, 디트로이트가 에인절스와의 더블헤더 2차전을 패하면서 레드삭스의 1경기 차 우승이 확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보스턴은 월드 시리즈에서 3승과 1홈런을 기록한 MVP 밥 깁슨에게 속수무책이었고, 카디널스는 7차전 접전 끝에 레드삭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보스턴의 좌익수 칼 야스트렘스키는 타율 .326, 44홈런, 121타점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아메리칸 리그 MVP가 되었습니다. 팀 동료 짐 론보그는 아메리칸 리그 최다인 22승과 246탈삼진으로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올랜도 세페다(타율 .325, 25홈런, 111타점)는 카디널스에서 보낸 첫 번째 풀타임 시즌에서 자신의 유일한 MVP를 수상했습니다.\n\n1967년의 기록과 순간:\n양키스의 강타자 미키 맨틀이 5월 14일 볼티모어의 스튜 밀러를 상대로 통산 500호 홈런을 때렸습니다. 7월 14일, 브레이브스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에디 매튜스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유니폼을 입고 후안 마리샬을 상대로 500호 홈런 고지를 밟았습니다. 이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로드 커루와 톰 시버가 1967년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68, 1968년은 투수의 시즌이라 부를 만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의 전체 타율이 .230에 그쳤으며, 타율 1위인 보스턴의 외야수 칼 야스트렘스키 역시 .301의 타율에 그쳤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우완 투수 밥 깁슨(22승 9패, 평균자책점 1.12)이 현대 야구의 평균자책점 신기록을 달성하며 내셔널 리그 MVP와 사이 영 상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데니 매클레인은 31승, 평균자책점 1.96, 280탈삼진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와 사이 영 상을 독식했습니다. 맥클레인의 타이거스는 103승으로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고, 월드 시리즈 MVP 미키 롤리치는 7차전에서 밥 깁슨을 무너뜨리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첫 월드 시리즈 트로피를 디트로이트로 가져왔습니다. 워싱턴 세너터스의 프랭크 하워드가 양대 리그 1위인 44홈런을 기록한 가운데, 1968년에는 단 7명의 타자만 30홈런 이상을 기록했습니다.\n\n1968년의 기록과 순간:\n조 메드윅, 구스 고슬린, 키키 쿠일러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4월 15일, 애스트로스가 24이닝 접전 끝에 메츠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애슬레틱스의 투수 캣피시 헌터는 5월 8일 트윈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습니다. 신시내티의 포수 조니 벤치(타율 .275, 15홈런, 82타점)는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고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는데, 이후 10년 동안 골드 글러브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1969, 1969년에는 4개 팀이 추가되었습니다. 시애틀 파일럿츠와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아메리칸 리그에 합류했고,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내셔널 리그에 들어왔습니다. 각 리그는 동부와 서부지구로 분리되었고,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가 신설되어 각 리그의 승자이자 월드 시리즈 진출팀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1969년은 미라클 메츠의 해였습니다. 8월까지 컵스에 9경기 반 차이로 뒤지던 메츠는 역전에 성공하고 내셔널 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뜨거운 기세를 이어간 뉴욕 메츠는 포스트시즌에서 단 한 경기만 패하면서 1969년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1969년은 1962년 창단 이후 짧은 역사를 이어온 메츠가 리그 9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첫해였습니다. 메츠의 주역은 외야수 클레온 존스(타율 .340, 12홈런, 75타점), 선발 투수 톰 시버(25승 7패, 평균자책점 2.21)와 제리 쿠스먼(17승 9패, 평균자책점 2.28)이었고, 터그 맥그로와 놀런 라이언 같은 젊은 투수들도 있었습니다. 얼 위버 감독이 처음으로 풀타임 시즌을 지휘한 볼티모어는 109승을 거두며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미네소타의 하먼 킬러브루는 아메리칸 리그에서 홈런(49), 타점(140), 볼넷(145) 1위를 차지하며 MVP를 차지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1루수 윌리 매커비(타율 .320, 45홈런, 126타점)는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1970, 외야수 커트 플러드는 시즌을 포기하고 야구의 보류 조항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후 자유 계약 선수 제도의 문을 열었습니다. 시애틀 파일럿츠는 단 1년 만에 연고지를 밀워키를 옮겼습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정규 시즌에서 108승을 거두고, 포스트시즌에서 미네소타와 신시내티를 물리치며 1970년 월드 시리즈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프랭크 로빈슨과 아메리칸 리그 MVP 부그 파웰이 타선을 주도한 가운데, 짐 파머, 마이크 쿠에야르, 데이브 맥널리가 모두 20승을 기록했습니다. 미네소타의 짐 페리(24승 12패, 평균자책점 3.04)는 오리올스의 선발 투수 3명과 클리블랜드의 샘 맥다월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며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밥 깁슨은 23승 7패, 평균자책점 3.12, 274탈삼진을 기록하며 두 번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 포수 조니 벤치는 내셔널 리그 최다인 45홈런과 148타점을 기록하며 첫 MVP를 수상했습니다.\n\n1970년의 기록과 순간:\n루 부드로, 얼 콤스, 제시 헤인즈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톰 시버는 4월 22일 파드리스전에서 19개의 탈삼진을 잡았는데, 마지막 열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습니다. 어니 뱅크스는 5월 12일 브레이브스의 팻 자비스를 상대로 500홈런을 때렸습니다. 행크 애런은 5월 17일 3,000번째 안타를 치면서 500홈런과 3,000안타를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 윌리 메이스가 그 두 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양키스의 포수 서먼 먼슨이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71, 샌프란시스코는 후반 질주로 라이벌 다저스를 1경기 차이로 밀어내고 내셔널 리그 서부지구 1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피츠버그, 볼티모어, 오클랜드는 각각 지구 우승을 순조롭게 차지했습니다. 월드 시리즈 7차전, 스티브 블래스가 4개의 안타만을 허용한 가운데 파이리츠가 볼티모어를 꺾고 1971년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417의 타율과 5개의 장타를 기록한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했습니다. 1971년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야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투수진을 보유했는데, 짐 파머, 마이크 쿠에야르, 팻 돕슨, 데이브 맥널리가 각각 20승을 기록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MVP이자 사이 영 상 수상자 바이다 블루와 20승 투수 캣피시 헌터를 보유한 애슬레틱스의 투수진도 훌륭했습니다. 포수에서 처음으로 3루수로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낸 조 토레가 타율 .363, 230안타, 137득점으로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했고, 그의 소속팀 카디널스는 내셔널 리그 동부지구에서 파이리츠에 7경기 뒤진 2위에 올랐습니다.\n\n1971년의 기록과 순간:\n필라델피아의 투수 릭 와이즈는 6월 23일 필리스가 신시내티를 4-0으로 이긴 경기에서 노히터를 기록하고 2개의 홈런을 때렸습니다. 하먼 킬러브루는 8월 10일 역대 10번째로 500홈런 고지를 밟았고, 한 달 뒤에는 프랭크 로빈슨이 11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애틀랜타의 포수 겸 내야수 얼 윌리엄스가 33개의 홈런을 때리며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72, 메이저 리그는 선수 파업으로 시즌 첫 한 주 반 동안 경기가 진행되지 못했고, 결국 시즌 초의 경기 몇 건이 취소되었습니다. 레지 잭슨이 부상으로 결장했음에도 오클랜드는 7차전 끝에 신시내티를 꺾고 1930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애슬레틱스의 진 테네이스는 홈런 4개를 때리면서 월드 시리즈 MVP로 선정되었습니다. 레즈의 포수 조니 벤치는 내셔널 리그 홈런(40)과 타점(125) 1위에 오르면서 5번째 골드 글러브를 수상한 끝에 두 번째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필리스에서 첫 시즌을 보낸 스티브 칼튼(27승 10패, 평균자책점 1.97, 310탈삼진, 8완봉)은 팀 성적이 최하위임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인디언스의 투수 게일로드 페리는 시카고의 너클볼 투수 윌버 우드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 짐 파머와 캣피시 헌터는 2.00 근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20승을 달성했습니다.\n\n1972년의 기록과 순간:\n세너터스 프랜차이즈는 남부로 근거지를 옮겨 텍사스 레인저스가 되었고,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사상 처음으로 야구팀이 없는 시즌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샌디 쿠팩스, 요기 베라, 얼리 윈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보스턴의 포수 칼튼 피스크는 타율 .293, 22홈런으로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에 올랐습니다.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시즌 마지막 주에 3,000안타의 벽을 깼지만, 새해 전날에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197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월드 시리즈 6, 7차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메츠를 꺾고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올랐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MVP 레지 잭슨(타율 .293, 32홈런, 117타점)과 3루수 샐 밴도(타율 .287, 29홈런, 98타점)가 타선을 주도했고, 선발 투수 켄 홀츠먼, 바이다 블루, 캣피시 헌터는 모두 20승을 달성했습니다. 뉴욕의 톰 시버는 19승과 평균자책점 2.08로 몬트리올의 마이크 마셜을 제치고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한편, 오리올스의 우완 투수 짐 파머(22승 9패, 평균자책점 2.40)는 캘리포니아의 투수 놀런 라이언(21승 16패, 평균자책점 2.87, 383탈삼진)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획득했습니다. 피트 로즈는 230안타를 기록하면서 44홈런과 119타점을 기록한 피츠버그의 윌리 스타젤을 제치고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n\n1973년의 기록과 순간:\n공격력을 높이고자 아메리칸 리그에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양키스의 론 블롬버그는 최초의 지명타자로 출전해 보스턴의 루이스 티안트를 상대로 볼넷을 얻어냈습니다. 워렌 스판과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샌디에이고는 드래프트 전체 4번 지명권을 사용하여 미네소타 대학의 스타 데이브 윈필드를 지명했습니다. 즉시 메이저 리그로 올라온 윈필드는 루키 시즌 56경기에서 .277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1974, 오클랜드는 월드 시리즈에서 LA 다저스를 5차전 만에 제압하고 3년 연속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애슬레틱스의 투수 캣피시 헌터는 다승(25)과 평균자책점(2.49) 1위에 오르며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다저스는 내셔널 리그 MVP 스티브 가비(타율 .312, 21홈런, 111타점)와 사이 영 상 수상자 마이크 마셜(15승 12패, 21세이브, 평균자책점 2.42, 중간계투로 208이닝 투구)의 활약 속에 정규 시즌에서 102승을 거두었습니다. 빌리 마틴은 1973년 57승에 그친 텍사스를 맡아 풀타임 첫 시즌 만에 84승을 거둔 팀으로 변모시켰습니다. 텍사스의 우익수 제프 버로우즈는 타율 .301, 25홈런, 118타점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했고, 선발 투수 퍼거슨 젠킨스는 25승, 평균자책점 2.82로 사이 영 상 투표 2위에 올랐습니다.\n\n1974년의 기록과 순간:\n양키스의 팀 동료 미키 맨틀과 화이티 포드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짐 바텀리와 샘 톰슨은 베테랑 위원회 심사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4월 6일, 행크 애런은 714호 홈런을 때리며 베이브 루스를 제치고 통산 홈런 1위로 등극했습니다. 그리고 4일 뒤 애런은 다시 한번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로열스의 선발 투수 스티브 버스비는 6월 두 번의 선발 등판에서 33타자 연속 범타 기록을 세웠습니다. 알 칼라인은 9월에 3,000안타 고지를 밟았습니다. 레인저스의 1루수 마이크 하그로브는 .323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습니다.
1975, 신시내티가 7차전 접전 끝에 보스턴 레드삭스를 꺾고 35년 만에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올랐습니다. 레즈는 2, 3, 7차전에서 마지막 타석에 결승 득점을 올려 승리했습니다. 보스턴의 포수 칼튼 피스크가 연장 12회에 길게 플라이볼을 쳤고, 피스크가 팔을 휘두르며 유도하는 가운데 공은 페어 지역으로 들어가 홈런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피스크는 레드삭스에게 6차전 승리를 선사했습니다. 레드삭스의 프레드 린은 타율.331, 21홈런, 105타점으로 아메리칸 리그에서 올해의 신인 및 MVP로 선정되었습니다. 베테랑 짐 파머(23승 11패, 평균자책점 2.09, 10완봉)와 톰 시버(22승 9패, 평균자책점 2.38, 243탈삼진)는 각각 사이 영 상을 받았했습니다. '빅 레드 머신'의 일원인 조 모건(타율 .327, 17홈런, 94타점, 107득점, 67도루)은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n\n1975년의 기록과 순간:\n프랭크 로빈슨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선수 겸 감독이 되면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감독이 되었습니다. 랄프 카이너, 얼 에버릴, 빌리 허먼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1975 시즌 이후 선수 협회가 오랫동안 지속되던 보류 조항에 이의를 제기한 이후 투수 앤디 메서스미스와 데이브 맥널리가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고, 이후 자유 계약 제도의 길이 열렸습니다.
1976, '빅 레드 머신'이 재가동되었습니다. 레즈는 정규 시즌 102승을 거두고 포스트시즌에서도 무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신시내티 2루수 조 모건(타율 .320, 27홈런, 111타점, 113득점, 60도루) 역시 2년 연속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고, 양키스의 포수 서먼 먼슨(타율 .302, 17홈런, 105타점, 14도루)은 처음이자 유일한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오리올스 선발 투수 짐 파머는 22승, 평균자책점 2.51로 4년 중 세 번째 사이 영 상을 받았고, 내셔널 리그 서부지구 5위에 그친 샌디에이고의 우완 투수 랜디 존스는 22승 14패, 평균자책점 2.74로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로열스의 3루수 조지 브렛은 .333의 타율로 팀 동료 할 맥레이를 제치고 첫 타격왕에 오르면서 캔자스시티의 첫 지구 우승을 이끌었습니다.\n\n1976년의 기록과 순간:\n디트로이트의 '새' 마크 피드리치는 기이한 투구 동작과 특이한 행동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지만, 이 시즌이 유일한 풀타임 시즌이었습니다. 로빈 로버츠와 밥 레몬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월터 앨스턴은 23개 시즌 동안 2,000승 이상을 거두고 다저스의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1977, 시애틀 매리너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합류로 아메리칸 리그가 14개 팀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양키스, 필리스, 로열스가 각각 100승 이상을 거두며 지구 우승을 차지했고, 98승의 다저스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자유 계약으로 영입한 레지 잭슨의 활약 속에 뉴욕은 6차전 만에 다저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잭슨은 6차전 3홈런을 포함해 월드 시리즈에서 5개의 홈런을 때리며 '10월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양키스의 구원 투수 스파키 라일은 13승,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17로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미네소타의 로드 커루는 타율(.388), 안타(239), 득점(128), 3루타(16) 리그 1위에 오르며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신시내티의 조지 포스터는 타율 .320, 52홈런, 149타점으로 내셔널 리그 MVP에 오르면서 지난 10년 동안 4명의 신시내티 타자들이 MVP를 수상했습니다.\n\n1977년의 기록과 순간:\n이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안드레 도슨과 에디 머레이가 각각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다저스의 스티브 가비, 레지 스미스, 론 세이, 더스티 베이커는 각각 30홈런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어니 뱅크스, 조 시웰, 에이모스 러시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1978, 양키스와 레드삭스는 시즌 내내 접전을 벌인 끝에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에서 동률로 시즌을 끝냈습니다. 단판 플레이오프에서 뉴욕 양키스는 버키 덴트와 레지 잭슨의 홈런으로 2점 차이의 열세를 뒤집고 승리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3년 연속으로 로열스를 제압한 양키스는 다저스까지 꺾고 1978년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피츠버그의 우익수 데이브 파커(타율 .334, 30홈런, 117홈런, 20도루)와 보스턴의 좌익수 짐 라이스(타율 .315, 46홈런, 139타점)는 각각 자신의 유일한 MVP를 수상했습니다. 양키스의 선발 투수 론 기드리(25승 3패, 평균자책점 1.74, 248탈삼진)는 최고의 한 해를 보내며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고, 파드레스의 게일로드 페리(21승 6패, 평균자책점 2.73)는 두 번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n\n1978년의 기록과 순간:\n에디 매튜스와 애디 조스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5월 5일, 피트 로즈가 3,000번째 안타를 쳤습니다. 또한 44경기 연속 안타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윌리 매커비는 6월 30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500호 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타이거스의 2루수 루 휘태커는 밀워키의 폴 몰리터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이 되었습니다. 애틀랜타의 밥 호너가 유격수 오지 스미스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습니다.
1979, 사이 영 상 수상자 마이크 플래너건과 우익수 켄 싱글턴이 이끄는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102승을 거두고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월드 시리즈에서는 5, 6, 7차전을 내리 승리한 내셔널 리그 챔피언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오리올스를 꺾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파이리츠의 1루수 윌리 스타젤은 포스트시즌에서 4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과 월드 시리즈 MVP를 독식했습니다. 스타젤은 또한 세인트루이스의 1루수 키스 에르난데스와 함께 공동으로 내셔널 리그 MVP로 선정되었습니다. 외야수 돈 베일러(타율 .296, 36홈런, 139타점, 22도루)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이끌며 아메리칸 리그 MVP에 올랐습니다. 시카고의 구원 투수 브루스 수터는 휴스턴의 투수 조 니크로와 J.R. 리처드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n\n1979년의 기록과 순간:\n윌리 메이스와 핵 윌슨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리글리 필드에서는 데이브 킹맨의 3홈런과 마이크 슈미트의 2홈런이 폭발한 가운데 필라델피아가 컵스를 상대로 23-22로 승리했습니다. 양키스의 포수 서먼 먼슨이 8월 2일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루 브록이 8월 13일 데니스 램프를 상대로 3,000번째 안타를 때렸습니다. 한 달 뒤, 보스턴의 칼 야스트렘스키가 양키스를 상대로 안타를 때리면서 3,000안타와 400홈런을 달성한 최초의 아메리칸 리그 선수가 되었습니다. 릭 서트클리프는 5할 승률 달성에 실패한 다저스에서 17승, 평균자책점 3.46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1980, 마이크 슈미트(타율 .286, 48홈런, 121타점)는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첫 월드 시리즈로 이끌었습니다. 이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3루수 슈미트는 1980년 내셔널 리그와 월드 시리즈 MVP로 지명되었습니다. 필리스의 선발 투수 스티브 칼튼은 24승 9패, 평균자책점 2.34의 기록으로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 캔자스시티의 3루수 조지 브렛은 4할 타율에 도전하면서 야구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브렛은 9월 20일까지 4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했지만, 최종적으로는 .390의 타율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로열스를 아메리칸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MVP까지 수상했습니다. 양키스는 103승을 거두며 100승의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제치고 10월에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정상에 올랐습니다.\n\n1980년의 기록과 순간:\n척 클라인, 듀크 스나이더, 알 칼라인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새 감독 빌리 마틴의 지도 아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선발 투수들은 94경기를 완투했습니다. 릭 랭포드, 마이크 노리스, 맷 키오가 모두 20승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1981, 야구 역사상 가장 길었던 선수 파업으로 1981년에는 두 달 동안 야구 경기가 없었습니다. 파업은 6월 12일에 시작되었고, 8월 9일 클리블랜드 무니시팔 스타디움에서 일정을 조정해 올스타전이 열릴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결국 시즌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전후반기의 지구 우승팀들이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양키스와 다저스가 길어진 플레이오프를 뚫고 월드 시리즈에서 만났으며, 이번에는 LA가 뉴욕을 꺾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LA의 투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는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상과 사이 영 상을 동시에 받으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멕시코 출신의 좌완 투수 발렌수엘라는 25경기에서 13승 7패, 평균자책점 2.48, 180탈삼진, 8완봉을 기록했습니다. 밀워키의 마무리 투수 롤리 핑거스는 처음으로 MVP와 사이 영 상을 같은 해에 함께 수상한 구원 투수가 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3루수 마이크 슈미트는 내셔널 리그 홈런, 타점, 득점, 볼넷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하며 2년 연속 MVP를 차지했습니다.\n\n1981년의 기록과 순간:\n밥 깁슨과 조니 마이즈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레즈의 투수 톰 시버는 4월 18일 키스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통산 3,000번째 탈삼진을 잡았습니다. 11일 후, 필리스의 스티브 칼튼 역시 3,000탈삼진 고지에 올랐습니다.
1982, 세인트루이스는 투수 호아킨 안두하와 브루스 수터의 활약 속에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밀워키를 6- 3으로 제압하고 월드 시리즈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카디널스의 포수 대럴 포터는 포스트시즌 10경기에서 19번이나 출루하는 활약 속에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과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했습니다. 브루어스는 시즌 마지막 날에 볼티모어에 역전하여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캘리포니아와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에서 5차전 끝에 승리했습니다. 밀워키의 주역은 각각 시즌 200안타 이상을 기록한 로빈 욘트, 폴 몰리터, 세실 쿠퍼였습니다. 욘트(타율 .331, 29홈런, 114타점, 129득점)는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아메리칸 리그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좌완 투수 스티브 칼튼(23승 11패, 평균자책점 3.10, 286탈삼진)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n\n1982년의 기록과 순간:\n행크 애런, 프랭크 로빈슨, 트래비스 잭슨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애런은 사상 최초의 만장일치 선정에서 9표가 모자랐습니다. 게일로드 페리는 5월 6일 시애틀에서 통산 300승에 성공했습니다. 롤리 핑거스는 8월 8일 최초의 300세이브 투수가 되었습니다. 오리올스의 유격수 칼 립켄 주니어(타율 .264, 28홈런, 93타점)와 다저스의 2루수 스티브 색스(타율 .282, 88득점, 49도루)는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오클랜드의 중견수 리키 헨더슨은 단일 시즌 최다인 130도루를 기록했습니다.
1983,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4승 1패로 필리스를 꺾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최종 5차전에서 에디 머레이가 2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고, 투수 스콧 맥그리거는 단 5안타만을 허용했습니다. 23세의 나이로 두 번째 풀타임 시즌을 치른 오리올스의 유격수 칼 립켄 주니어는 타율 .318, 27홈런, 102타점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애틀랜타의 중견수 데일 머피는 타율 .302, 36홈런, 121타점으로 2년 연속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필리스의 투수 존 데니(19승 6패, 평균자책점 2.37)와 화이트삭스의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이끈 라마르 호이트(24승 10패, 평균자책점 3.66)는 각 리그의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n\n1983년의 기록과 순간:\n브룩스 로빈슨, 후안 마리샬, 조지 켈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7월 24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뉴욕 양키스의 경기에서는 파인 타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로열스 3루수 조지 브렛이 결승 홈런을 때렸지만, 배트에 파인 타르를 과도하게 발랐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자 심판에게 돌진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로열스의 이의 제기 끝에 홈런 판정은 인정되었습니다. 스티브 가비의 연속 출장 기록이 7월 1,207경기에서 종료되었습니다. 메츠의 외야수 대럴 스트로베리(타율 .257, 26홈런, 74타점)와 화이트삭스의 외야수 론 키틀(타율 .254, 35홈런, 100타점)이 각각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84, 디트로이트는 시즌 첫 40경기에서 35승을 질주했고, 결국 토론토에 15경기 앞선 104승으로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하고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에도 올랐습니다. 타이거스의 마무리 투수 윌리 에르난데스는 9승 3패, 32세이브, 평균자책점 1.92, 112탈삼진으로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과 MVP를 석권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MVP 라인 샌버그와 사이 영 상 수상자 릭 서트클리프가 활약한 시카고 컵스는 내셔널 리그 동부지구를 제패하고 40년 가까이 진출하지 못한 포스트시즌에 나섰지만, 2대 0으로 앞서던 중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내리 패배하면서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트로피를 빼앗기고 맙니다. 메츠의 우완 투수 드와이트 구든(17승 9패, 평균자책점 2.60, 276탈삼진)과 시애틀의 1루수 앨빈 데이비스(타율 .284, 27홈런, 116타점)가 각각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n\n1984년의 기록과 순간:\n돈 드라이스데일, 하먼 킬러브루, 루이스 아파리시오, 피 위 리즈, 릭 페럴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4월 13일, 피트 로즈는 4,000번째 안타를 때려냈습니다. 9월 17일, 레지 잭슨은 버드 블랙을 상대로 500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뉴욕의 1루수 돈 매팅리는 시즌 마지막 날 5타수 4안타를 기록하면서 .343의 타율로 .340의 팀 동료 데이브 윈필드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1985, 캔자스시티는 같은 주의 라이벌 세인트루이스와의 월드 시리즈에서 1승 3패의 열세를 뒤집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로열스는 7차전에서 월드 시리즈 MVP이자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의 주인공 브렛 세이버하겐의 역투 속에 11-0의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두 번째 시즌을 맞은 20세의 메츠 투수 드와이트 구든은 내셔널 리그 다승(24), 평균자책점(1.56), 탈삼진(268) 1위에 오르며 사이 영 상까지 받았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중견수 윌리 맥기(타율 .353, 10홈런, 82타점, 104득점, 56도루)는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했고, 양키스의 1루수 돈 매팅리(타율 .324, 35홈런, 145타점)는 자신의 유일한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8월에 다시 한번 선수들의 파업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단 이틀에 그쳤고, 모든 경기가 정상적으로 치러졌습니다.\n\n1985년의 기록과 순간:\n루 브록, 호이트 윌헬름, 에노스 슬로터, 아키 본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놀런 라이언은 7월 11일 메이저 리그 투수로서는 역대 최초로 4,000탈삼진 고지를 밟았습니다. 카디널스의 빈스 콜맨이 110도루를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86, 뉴욕 메츠는 월드 시리즈 6차전과 7차전에서 모두 역전승을 거두며 보스턴 레드삭스를 누르고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6차전 끝내기 점수를 내준 빌 버크너의 실책은 월드 시리즈 역사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메츠는 1986년 양대 리그 전체 1위인 팀 평균자책점 3.11을 기록한 드와이트 구든, 론 달링, 밥 오헤다, 시드 페르난데스, 릭 아길레라의 선발 로테이션에 힘입어 108승을 거두었습니다. 보스턴의 투수 로저 클레멘스는 24승 4패, 평균자책점 2.48, 238탈삼진으로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습니다. '로켓' 클레멘스는 4월 29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사상 최초로 한 경기 20탈삼진을 달성했습니다. 필리스의 3루수 마이크 슈미트(타율 .290, 37홈런, 119타점)는 8번째로 내셔널 리그 홈런왕에 오르면서 통산 3번째 내셔널 리그 MVP까지 수상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서부지구 우승팀 애스트로스의 선발 투수 마이크 스콧은 18승 10패, 평균자책점 2.22, 306탈삼진으로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n\n1986년의 기록과 순간:\n윌리 매커비, 어니 롬바르디, 바비 도어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오클랜드의 외야수 호세 칸세코(타율 .240, 33홈런, 117타점)가 캘리포니아의 월리 조이너(타율 .290, 22홈런, 100타점)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87, 미네소타가 7차전 승부 끝에 카디널스를 제치고 1987년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오르면서 1924년 워싱턴 세너터스가 거둔 우승 이후 프랜차이즈 첫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토론토의 외야수 조지 벨(타율 .308, 47홈런, 134타점)과 컵스의 외야수 안드레 도슨(타율 .287, 49홈런, 137타점, 11도루)이 각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오클랜드의 강타자 마크 맥과이어는 타율 .289와 아메리칸 리그 최다인 49홈런을 때리면서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을 차지했습니다. 파드리스의 포수 베니토 산티아고는 타율 .300, 18홈런, 79타점, 21도루로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이 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마무리 투수 스티브 베드로시안(5승 3패, 40세이브, 평균자책점 2.83)은 릭 서트클리프와 릭 레우쉘을 누르고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로저 클레멘스는 2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n\n1987년의 기록과 순간:\n빌리 윌리엄스와 짐 '캣피시(메기)' 헌터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필리스의 마이크 슈미트는 4월 17일 500번째 홈런을 때렸습니다. 7월, 돈 매팅리는 역대 최다 기록이었던 8경기 연속 홈런을 달성했습니다. 몬트리올의 외야수 팀 레인스가 2타점 3루타를 때리며 내셔널 리그에서 2-0으로 승리했고, 레인스는 올스타전 MVP로 선정되었습니다.
1988, LA 다저스는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에서 7회전 끝에 100승의 메츠를 꺾은 데 이어 월드 시리즈에서 104승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5회전 끝에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다저스의 외야수 커크 깁슨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1차전에서 오클랜드의 마무리 투수 데니스 에커슬리를 상대로 불가능에 가까운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그 순간 아나운서 잭 벅의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라는 멘트는 월드 시리즈 역사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게 됩니다. 깁슨(타율 .290, 25홈런, 106타점, 35도루)은 뉴욕의 외야수 대럴 스트로베리와 케빈 맥레이놀즈를 제치고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다저스의 팀 동료 오렐 허샤이저는 23승 8패, 평균자책점 2.26으로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 '불도그' 허샤이저는 1988년 시즌 동안 포스트시즌 2경기를 비롯해 10경기의 완봉승을 달성했고, 59이닝 연속 무실점으로 다저스의 정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미네소타의 좌완 투수 프랭크 바이올라(24승 7패, 평균자책점 2.64)는 트윈스에서의 마지막 풀타임 시즌에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거머쥐었습니다.\n\n1988년의 기록과 순간:\n1988년에는 윌리 스타젤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21연패로 시즌을 시작했고 결국 리그 최악인 107패를 기록했습니다. 신시내티의 투수 톰 브라우닝은 9월 16일 챔피언 다저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습니다. 토론토의 데이브 스티엡은 9월에 두 경기 연속으로 아웃카운트 2개를 남기고 노히터를 놓쳤습니다. 호세 칸세코는 메이저 리그 역사 최초로 단일 시즌에 40홈런과 40도루를 함께 달성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1989,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지역 라이벌 자이언츠를 4연승으로 무찌르고 1989년 월드 시리즈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한편 3차전이 열리기 직전 캘리포니아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으로 인해 애슬레틱스가 승리한 월드 시리즈 마지막 두 경기는 열흘이 지나서야 열렸습니다. 정규 시즌 99승을 달성한 오클랜드의 중심에는 투수진이 있었습니다. 선발 투수 4명(데이브 스튜어트, 마이크 무어, 밥 웰치, 스톰 데이비스)은 도합 76승을 기록했고, 마무리 투수 데니스 에커슬리는 4승 0패, 33세이브, 평균자책점 1.56을 기록했습니다. 캔자스시티의 선발 투수 브렛 세이버하겐(23승 6패, 평균자책점 2.16)은 25세의 나이로 두 번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브루어스의 로빈 욘트와 자이언츠의 케빈 미첼은 각 리그 MVP로 선정되었습니다.\n\n1989년의 기록과 순간:\n조니 벤치, 칼 야스트렘스키, 레드 쇼엔디스트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피트 로즈는 야구 도박 혐의로 메이저리그로부터 영구 제명되었습니다. 6월 5일에는 개폐식 지붕을 갖춘 최초의 야구장인 스카이돔이 토론토에서 개장했습니다. 야구 영화의 고전인 "메이저 리그"와 "꿈의 구장"이 1989년에 개봉했습니다.
1990, 신시내티 레즈는 강력한 우승 후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4전 전승으로 제압하고 1970년대 빅 레드 머신의 시대 이후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애슬레틱스는 정규 시즌 103승을 기록하고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에서는 레드삭스를 4전 전승으로 제압했지만, 마무리가 실망스러웠습니다. 오클랜드의 리키 헨더슨(타율 .325, 28홈런, 61타점, 119타점, 65도루)과 밥 웰치(27승 6패, 평균자책점 2.95)는 각각 아메리칸 리그 MVP와 사이 영 상을 나누어 가져갔습니다. 배리 본즈는 생애 첫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했고, 피츠버그의 팀 동료 덕 드레이벡은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n\n1990년의 기록과 순간:\n짐 파머와 조 모건이 후보 자격을 얻은 첫해 만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6월 29일, 데이브 스튜어트와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각각 노히터를 달성하면서 메이저 리그 역사상 최초로 같은 날 2개의 노히터 경기가 나왔습니다. 놀런 라이언은 7월 31일에 300승을 달성했습니다. 애틀랜타의 외야수 데이비드 저스티스와 클리블랜드의 포수 샌디 알로마 주니어는 각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91, 미네소타 트윈스는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연장 10이닝 혈투 끝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1-0으로 꺾고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트윈스의 선발 투수 잭 모리스는 10이닝 완봉승을 거두며 월드 시리즈 MVP에 올랐습니다. 유격수 칼 립켄 주니어는 타율 .323, 34홈런, 114타점으로 두 번째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애틀랜타의 3루수 테리 펜들턴은 배리 본즈를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브레이브스의 좌완 투스 톰 글래빈은 커리어 첫 20승을 달성하고 첫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n\n1991년의 기록과 순간:\n로드 커루, 퍼거슨 젠킨스, 게일로드 페리, 토니 라제리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텍사스의 투수 놀런 라이언은 44세의 나이로 5월 1일 토론토 전에서 자신의 일곱 번째 노히터를 달성했습니다. 같은 날, 리키 헨더슨은 939번째 도루에 성공하며 루 브록을 제치고 통산 도루 1위에 올랐습니다. 몬트리올의 투수 데니스 마르티네스는 7월 28일 LA 다저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습니다. 휴스턴의 1루수 제프 배그웰이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92, 베테랑 잭 모리스, 조 카터, 데이브 윈필드가 이끄는 토론토가 월드 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4승 2패로 꺾고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브레이브스는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에서 7차전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피츠버그를 누르고 2년 연속 월드 시리즈에 올라간 상황이었습니다. 대타 프란시스코 카브레라의 안타 때 2루에 있던 시드 브림이 좌익수 배리 본즈의 송구보다 간발의 차이로 빠르게 홈으로 들어와 득점했습니다. 오클랜드의 마무리 투수 데니스 에커슬리는 7승 1패, 평균자책점 1.93, 51세이브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과 MVP를 모두 석권했습니다. 파이리츠의 외야수 배리 본즈와 컵스의 투수 그레그 매덕스는 각각 내셔널 리그 MVP와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n\n1992년의 기록과 순간:\n투수 톰 시버, 롤리 핑거스, 할 뉴하우저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볼티모어 시내에 오리올 파크 앳 캠든 야즈가 개장하면서 동그랗기만 하던 야구장의 시대에서 벗어났습니다. 로빈 욘트와 조지 브렛은 9월에 10일 차이를 두고 3,000안타를 돌파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유격수 아지 스미스는 37세의 나이로 13번째이자 마지막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1993,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6차전 끝에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제압하고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토론토의 외야수 조 카터가 필리스의 마무리 투수 미치 윌리엄스를 상대로 터뜨린 끝내기 2점 홈런은 월드 시리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103승을 거두었지만, 1경기 차이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내셔널 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내주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이다음 시즌부터는 각 리그에 와일드카드가 추가되었습니다. 1993년에는 플로리다 말린스와 콜로라도 로키스가 내셔널 리그에 합류하면서 총 28개 팀이 되었습니다. 화이트삭스의 1루수 프랭크 토머스가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했고, 외야수 배리 본즈는 자이언츠에서의 첫 시즌에 자신의 세 번째 내셔널 리그 MVP를 거머쥐었습니다. 애틀랜타는 시카고 컵스에서 그레그 매덕스를 영입했는데, 매덕스는 새 팀에서 2년 연속 사이 영 상을 받아 보답했습니다.\n\n1993년의 기록과 순간:\n레지 잭슨이 94%의 투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7월 말에는 켄 그리피 주니어가 8경기 연속 홈런을 때리며 돈 매팅리, 데일 롱과 동률을 기록했습니다. 외야수 데이브 윈필드가 데니스 에커슬리를 상대로 3,000번째 안타를 때렸습니다. 포수 마이크 피아자(타율 .318, 35홈런, 118타점)는 LA 다저스 선수 중 두 번째로 5년 연속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1994, 1994년은 메이저 리그에 있어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8월 12일 시작된 선수 노조 파업으로 남은 시즌은 물론 포스트시즌 전체 경기까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특히나 당시 최고의 성적을 기록 중이던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이후 이때와 같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더욱더 아쉬웠습니다. 애스트로스의 1루수 제프 배그웰(타율 .368, 39홈런, 116타점, 104득점, 15도루)과 화이트삭스의 1루수 프랭크 토머스(타율 .353, 38홈런, 101타점, 106득점)는 대단한 시즌을 보낸 끝에 각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애틀랜타의 그레그 매덕스는 만장일치 득표를 받으며 3년 연속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데이비드 콘(16승 5패, 평균자책점 2.94)은 양키스의 지미 키(17승 4패, 평균자책점 3.27)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n\n1994년의 기록과 순간:\n스티브 칼튼, 필 리주토, 레오 두로셔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보스턴의 유격수 존 발렌틴은 7월 8일 메이저 리그 역사상 10번째 무보살 삼중살을 기록했습니다. 텍사스의 좌완 투수 케니 로저스는 7월 28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전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습니다.
1995, 1995년 4월 25일, 232일간의 분쟁을 끝내고 메이저 리그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파업으로 다소 단축된 1995년 시즌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100승 44패로 다른 팀들을 30경기 이상 앞지른 채 아메리칸 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월드 시리즈에서는 그레그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가 이끄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브레이브스는 1957년 밀워키 브레이브스 시절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신시내티의 유격수 배리 라킨은 1962년 모리 윌스 이후 처음으로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한 유격수가 되었습니다. 압도적인 활약을 펼친 선발 투수 두 명이 사이 영 상을 가져갔는데, 애틀랜타의 그레그 매덕스는 19승 2패, 평균자책점 1.65를 기록했고, 매리너스의 랜디 존슨은 18승 2패, 평균자책점 2.48을 기록했습니다.\n\n1995년의 기록과 순간:\n오리올스에서 오랫동안 뛰었던 에디 머레이가 6월 30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선수로서 3,000안타 고지를 밟았습니다. 필리스의 위대한 선수들인 리치 애쉬번과 마이크 슈미트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9월 6일, 칼 립켄 주니어가 루 게릭의 2,130경기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깨면서 새로운 철마로 등극했습니다.
1996, 뉴욕 양키스는 6차전 끝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꺾고 18년 만에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마무리 투수 존 웨틀랜드는 승리한 4경기에서 모두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했습니다. 블루제이스의 선발 투수 팻 헨트겐(20승 10패, 평균자책점 3.22)은 리그 역사상 가장 치열한 투표 끝에 뉴욕의 앤디 페티트(21승 8패, 평균 3.87)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애틀랜타의 투수 존 스몰츠는 24승 8패, 평균자책점 2.94, 276탈삼진으로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 텍사스의 외야수 후안 곤잘레스와 샌디에이고의 3루수 켄 캐미니티는 각 리그의 MVP로 선정되었습니다.\n\n1996년의 기록과 순간:\n짐 버닝과 얼 위버는 베테랑 위원회 심사를 거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신시내티에서 열린 개막전 첫 이닝에서 심판 존 맥셰리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가 타율 .314, 10홈런, 78타점, 104득점, 14도루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97, 시애틀의 중견수 켄 그리피 주니어가 아메리칸 리그 홈런(56), 득점(125), 타점(147), 장타율(.646), 총 루타 수(393) 1위를 차지하면서 만장일치로 아메리칸 리그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콜로라도의 우익수 래리 워커 역시 내셔널 리그를 지배하면서 첫 캐나다 출신 MVP가 되었습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출신의 워커는 타율 .366, 49홈런, 130타점, 33도루를 기록했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플로리다 말린스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7차전 승부 끝에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플로리다는 7차전 9회에 동점을 만든 다음 11회 에드가 렌테리아의 안타로 역전에 성공했습니다.\n\n1997년의 기록과 순간:\n보스턴의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타율 .306, 30홈런, 98타점, 22도루)와 필라델피아의 3루수 스콧 롤렌(타율 .283, 21홈런, 92타점, 16도루)이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필 니크로, 넬리 폭스, 토미 라소다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메이저 리그 인종 통합 50주년을 맞아 4월 15일, 재키 로빈슨의 등 번호인 42번이 전 구단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1998, 빅 맥, 새미, 그리고 확장.\n\n강타자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단일 시즌 홈런 기록에 도전하면서 미국을 열광에 빠뜨렸습니다. 두 선수 모두 로저 매리스가 1961년에 기록한 61개 홈런을 넘어섰고, 맥과이어가 마지막 3경기에서 5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70홈런의 고지를 밟은 첫 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셔널 리그 MVP는 컵스를 플레이오프로 이끈 소사였습니다. 1998년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가 추가되면서 메이저 리그는 30개 팀으로 늘어났습니다. 1998년의 뉴욕 양키스는 현대 야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로, 114승을 거둔 뒤 월드 시리즈에서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4전 전승으로 제압했습니다.\n\n1998년의 기록과 순간:\n컵스의 선발 투수 케리 우드가 5월 6일 자신의 다섯 번째 메이저 리그 선발 경기에서 20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13승 6패, 평균자책점 3.40, 233탈삼진을 기록한 시카고의 우완 투수 우드는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이 되었습니다. 돈 서튼, 래리 도비, 조지 데이비스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애틀랜타의 좌완 투수 톰 글래빈이 샌디에이고의 투수 케빈 브라운과 트레버 호프만을 제치고 두 번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로저 클레멘스가 7월 5일 3,000탈삼진을 돌파했습니다. 볼티모어의 칼 립켄 주니어가 2,632번째 경기에서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종료했습니다.
1999, 뉴욕 양키스는 플레이오프에서 단 1패만을 기록한 끝에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하며 왕조를 이어갔습니다. 텍사스의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는 보스턴의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인디언스의 로베르토 알로마, 매니 라미레스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MVP 투표에서 1위부터 4위까지의 점수 차이가 26점에 불과할 정도의 접전이었습니다. 마르티네스는 대신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애틀랜타의 3루수 치퍼 존스는 타율 .319, 45홈런, 110타점으로 내셔널 리그 MVP에 만장일치로 선정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백스의 선발 투수 랜디 존슨은 내셔널 리그에서 보내는 첫 풀타임 시즌에 사이 영 상을 차지했고, 이후 4년 연속으로 이 상을 휩쓸었습니다.\n\n1999년의 기록과 순간:\n놀런 라이언, 조지 브렛, 로빈 욘트가 투표 자격을 얻은 첫해에 모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올랜도 세페다는 베테랑 위원회 심사 끝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토니 그윈과 웨이드 보그스는 8월 중 이틀에 걸쳐 각각 3,000안타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2000, 44년 만에 열린 지하철 시리즈에서 양키스가 메츠를 4승 1패로 물리치면서 1972~1974년 애슬레틱스 이후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 3연승에 성공했습니다. 레드삭스의 우완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세 번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마르티네스는 18승 6패를 기록했으며, 평균자책점 1.74는 지난 32년간 아메리칸 리그 기록 가운데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자이언츠의 2루수 제프 켄트는 타율 .334, 33홈런, 125타점을 올리며 지난 40년간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한 세 번째 2루수가 되었습니다.\n\n2000년의 기록과 순간:\n레즈는 오프시즌 동안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켄 그리피 주니어를 영입했습니다. 신시내티 출신의 그리피는 고향 팀에서 맞이한 첫 시즌에 타율 .278, 40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오리올스의 유격수 칼 립켄 주니어는 4월 15일 3,000번째 안타를 치면서 3,000안타와 400홈런을 함께 달성한 7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포수 칼튼 피스크, 1루수 토니 페레스, 그리고 스파키 앤더슨 감독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2001,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고 미국 야구에 처음 도전한 스즈키 이치로가 242개의 안타와 56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습니다. 한편, 자이언츠의 강타자 배리 본즈는 단일 시즌 최다 홈런인 73개와 177볼넷, 장타율 .863의 기록으로 4번째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선발 투수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이 이끄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뉴욕 양키스를 꺾고 첫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애리조나의 외야수 루이스 곤잘레스가 7차전에서 양키스의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때렸습니다.\n\n2001년의 기록과 순간:\n커비 퍼켓, 데이브 윈필드, 빌 마제로스키, 힐튼 스미스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이치로의 시애틀 매리너스는 아메리칸 리그 역대 최다승인 116승을 기록했지만, 우승에는 실패했습니다. 뉴욕 양키스의 로저 클레멘스는 20승 3패, 평균자책점 3.51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알버트 푸홀스는 타율 .329, 37홈런, 130타점으로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습니다.
2002, 2승 3패로 뒤처지던 애너하임 에인절스는 배리 본즈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역전에 성공하면서 2002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평이 좋지 않았던 올스타전에서는 11회 종료 후 양 팀이 모든 투수를 등판시킨 상태에서 버드 셀릭 커미셔너가 무승부를 선언했습니다. 오클랜드의 선발 투수 배리 지토는 폭포수 커브를 앞세워 23승 5패, 평균자책점 2.75를 기록하고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팀 동료 미겔 테하다는 타율 .308, 34홈런, 131타점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두 명의 스타를 보유하면서 정규 시즌에 20연승을 달리기도 했던 애슬레틱스였지만, 디비전 시리즈를 넘지는 못했습니다. 배리 본즈는 계속해서 내셔널 리그 투수들을 두들겼고, .370의 타율로 첫 타격왕에 오르며 2년 연속 내셔널 리그 MVP까지 차지했습니다.\n\n2002년의 기록과 순간:\n2002년에는 오지 스미스가 유일하게 2002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5월 2일, 시애틀 매리너스의 중견수 마이크 카메론은 메이저 리그 역사상 13번째로 한 경기에서 4개의 홈런을 친 선수가 되었습니다. 3주 뒤, 다저스의 외야수 숀 그린 역시 한 경기에서 4홈런을 기록했고, 이 경기에서 6타수 6안타, 6득점, 7타점을 올렸습니다. 결국 LA 다저스는 16-3으로 승리했습니다.
2003,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와 신인 돈트렐 윌리스, 미겔 카브레라가 활약한 플로리다 말린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6차전 승부 끝에 뉴욕 양키스를 제압하면서 팀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45년 이후 월드 시리즈에 오르지 못한 시카고 컵스의 저주는 다시 한번 발현되는 듯했습니다. 컵스는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 7차전에서 모두 역전패를 당했는데, 모이세스 알루가 타구를 잡으려다 홈 팬의 방해를 받은 사고까지 발생했습니다. 다저스의 마무리 투수 에릭 가니에는 55번의 세이브 상황에서 모두 세이브를 기록한 활약 끝에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로이 할러데이는 승리투수 조건을 달성한 경기에서 15경기 연속으로 승리하는 기록을 세우며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거머쥐었습니다.\n\n2003년의 기록과 순간:\n포수 게리 카터와 1루수 에디 머레이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로저 클레멘스는 카디널스전에서 300승과 4,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텍사스 레인저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보내며 3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에 오르고 첫 MVP까지 수상했습니다.
2004, 밤비노의 저주가 깨지다!\n\n보스턴 레드삭스가 2004 월드 시리즈에서 105승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4전 전승으로 제압하고 86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월드 시리즈로 가는 길은 더욱더 극적이었는데, 라이벌 양키스와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3패로 뒤지던 중 내리 4승을 거두며 승리했습니다. 특히 6차전은 커트 실링이 경기 전 발목 수술을 받고 나선 경기에서 승리한 후 카메라에 잡힌 '핏빛 양말'로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경기가 되었습니다. 트윈스의 투수 요한 산타나는 승리투수 조건을 달성한 경기에서 13경기 연속 승리한 끝에 첫 번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한편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첫 시즌을 보낸 로저 클레멘스는 7번째이자 마지막 사이 영 상을 받고 역대 최고령 수상자(40세)가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배리 본즈는 본인의 마지막 시즌에 7번째 내셔널 리그 MVP를 획득하며 투수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대부분 팀은 자이언츠의 본즈를 상대하지 않으려 했고, 결국 그는 총 120개의 고의사구를 얻어냈습니다.\n\n2004년의 기록과 순간:\n매리너스의 우익수 스즈키 이치로가 262개의 안타를 때리면서 84년간 이어지던 조지 시슬러의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데니스 에커슬리와 폴 몰리터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8월 7일, 그레그 매덕스가 역사상 22번째 300승 투수가 되었습니다.
2005,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4전 전승으로 제압하고 1917년 이후 첫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올랐습니다.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워싱턴 D.C.로 연고지를 옮겨 워싱턴 내셔널스가 되면서 다시 미국의 수도에 야구가 돌아왔습니다. 내셔널스는 미국 땅에서 보낸 첫 시즌을 81승 81패로 준수하게 마쳤습니다. 토론토에서 평범하게 활약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건너온 크리스 카펜터는 21승 5패, 평균자책점 2.83의 돌풍을 일으키며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n\n2005년의 기록과 순간:\n라인 샌버그와 웨이드 보그스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1루수 라이언 하워드가 2005년 후반기에 타율 .288, 22홈런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이 되었습니다.
200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정규 시즌 83승 79패를 거두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면서 역대 최소 승수의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한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1990년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필리스의 1루수 라이언 하워드는 첫 풀타임 시즌에 타율 .313, 58홈런, 149타점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미네소타는 2006년 아메리칸 리그의 상을 휩쓸었습니다. 1루수 저스틴 모어노가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하고 선발 투수 요한 산타나가 사이 영 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두 선수를 보유하고 96승을 기록했지만, 트윈스는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3전 전패로 물러났습니다.\n\n2006년의 기록과 순간:\n브루스 수터와 많은 니그로 리그의 스타들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조 마우어가 .347의 타율로 1942년 어니 롬바르디(.330) 이후 첫 아메리칸 리그 포수 타격왕에 등극했습니다.
2007, 배리 본즈는 8월 7일 내셔널스의 마이크 배식을 상대로 통산 756호 홈런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다 홈런 1위에 등극했습니다. 이는 행크 애런의 올타임 기록을 추월한 것입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승 3패의 열세를 극복하고 월드 시리즈까지 올라, 콜로라도 로키스를 4연승으로 정리하고 2000년대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로키스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단판 플레이오프를 포함해 정규 시즌 마지막 22경기에서 21승을 거두고 와일드카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시즌 종료 17경기를 앞두고 7경기 차로 선두를 달리던 뉴욕 메츠는 마지막에 무너지며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1993년 이후 첫 지구 우승을 내주었습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지미 롤린스는 각각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n\n2007년의 기록과 순간:\n토니 그윈과 칼 립켄 주니어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샌디에이고의 마무리 투수 트레버 호프만이 6월 6일 다저스전에서 메이저 리그 최초로 500번째 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애스트로스의 2루수 크렉 비지오는 6월 28일 3,000안타 고지에 오르며 한 팀에서만 3,000안타를 때린 9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8월 5일에는 톰 글래빈이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300승을 따냈습니다. 8월 22일에는 텍사스가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30- 3으로 대파하면서 아메리칸 리그 기록을 세웠습니다. 볼티모어의 유격수 미겔 테하다는 손목에 투구를 맞는 바람에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1,152경기에서 끝냈습니다.
2008,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탬파베이 레이스를 꺾으면서 오랜만에 역사상 두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인디언스의 클리프 리와 자이언츠의 팀 린스컴은 팀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사이 영 상을 받았고, 세인트루이스의 1루수 알버트 푸홀스와 보스턴의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각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n\n2008년의 기록과 순간:\n그레그 매덕스가 5월 10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 통산 350승을 달성했습니다. 이후 그는 역대 8위인 통산 355승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켄 그리피 주니어는 6월 9일 600번째 홈런을 때렸습니다. 39세의 선발 투수 마이크 무시나가 메이저 리그 18년 경력 최초로 20승을 달성했습니다.
2009, 다시 챔피언에 오른 양키스\n\n브롱크스 폭격기가 시즌 103승을 거두고 월드 시리즈에서 필리스를 꺾으면서 통산 27번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자유 계약으로 영입한 CC 사바시아, 마크 테세이라, A.J. 버넷의 활약이 컸습니다. 트윈스의 포수 조 마우어에게도 2009년은 잊을 수 없는 시즌이었습니다. 부상으로 4월 내내 뛰지 못했음에도 타율 .365, 28홈런, 96타점을 기록하면서 아메리칸 리그 MVP와 자신의 두 번째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압도적인 활약을 펼친 투수가 많지 않은 가운데 최하위 로열스의 잭 그레인키가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받았습니다. 카디널스의 1루수 알버트 푸홀스와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 팀 린스컴은 각각 2년 연속 내셔널 리그 MVP와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n\n2009년의 기록과 순간:\n리키 헨더슨, 짐 라이스, 조 고든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양키스는 '스타인브레너가 지은 집'이라 불리는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을 개장했고, 메츠 역시 새 구장을 열었습니다. 랜디 존슨이 6월 4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300승을 달성하고 시즌 종료 후 은퇴했습니다. 화이트삭스의 투수 마크 벌리는 7월 29일 탬파베이전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고, 다음 선발 경기까지 총 45타자 연속 아웃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강력한 투수진과 적시에 터진 타격을 바탕으로 텍사스 레인저스를 4승 1패로 꺾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 해 포스트시즌의 하이라이트는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의 로이 할러데이가 신시내티를 상대로 보여준 노히터 경기였습니다. 할러데이의 활약은 '투수의 해' 2010년의 정점을 장식했습니다. 그는 시즌 초반 플로리다전에서 1-0 퍼펙트 게임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오클랜드의 댈러스 브레이든도 탬파베이전에서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습니다.\n\n기록:\n알렉스 로드리게스가 8월에 600번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메이저 리그 최다인 257개의 홈런을 때렸습니다. 바비 콕스 감독이 2,500승 이상을 거두고 은퇴했습니다. 한편,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18시즌 연속 패배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7차전 접전 끝에 텍사스 레인저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알버트 푸홀스가 3차전에서 홈런 3개를 날렸고, 6차전에서는 카디널스의 극적인 역전극이 펼쳐졌습니다. 카디널스는 포스트시즌에 뒤늦게 합류했지만, 9월의 폭주로 끝까지 머물렀습니다. 시즌 마지막 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아홉 이닝 앞서고 있던 보스턴 레드삭스가 그야말로 몰락했고, 이 믿을 수 없는 드라마는 야구 역사에 길이 남았습니다.\n\n기록:\n디트로이트의 저스틴 벌랜더가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과 MVP를 독식했습니다.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가 3,000안타 고지를 밟았습니다. 이후 팀 동료 마리아노 리베라는 새로운 메이저 리그 통산 세이브 기록인 603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2012, 샌프란시스코는 월드 시리즈 4경기 동안 타이거스에 단 6점만을 내주면서 전승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2012년에도 투수들이 정규 시즌을 지배했는데, 필립 험버(화이트삭스), 맷 케인(자이언츠), 펠릭스 에르난데스(매리너스)의 퍼펙트 게임을 포함하여 총 7번의 노히터가 나왔습니다. 메츠의 R.A. 디키는 사이 영 상을 받은 최초의 너클볼 투수가 되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미겔 카브레라는 아메리칸 리그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루키인 마이크 트라웃(에인절스)과 브라이스 하퍼(내셔널스)는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n\n기록: 레인저스의 조시 해밀턴은 5월 8일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홈런 4개를 때려냈습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631호 홈런을 치면서 켄 그리피 주니어를 넘어섰습니다. 또한 통산 23번째 만루홈런을 때리면서 루 게릭과 동률을 이루었습니다. 49세의 제이미 모이어는 역대 최고령 타점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2013, 보스턴 레드삭스가 지난 10년 사이에 세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4월, 데이비드 오티즈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폭탄 테러가 벌어지고 5일 뒤 펜웨이 파크에서 인상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탬파베이의 윌 마이어스와 마이애미의 호세 페르난데스가 각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페르난데스의 팀 동료인 헨더슨 알바레즈는 타이거스를 상대로 노히터를 달성했고, 팀은 9회 말 와일드 피치로 득점하여 승리했습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21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고, LA 다저스에서는 야시엘 푸이그가 데뷔했습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으로 211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습니다.\n\n기록:\n9월 26일, 마리아노 리베라가 양키 스타디움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며 마운드에서 내려와 빛나는 커리어를 마무리했습니다. 팀 동료 데릭 지터와 앤디 페티트가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201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매디슨 범가너의 압도적인 활약(월드 시리즈 평균자책점 0.43)으로 지난 5년 사이에 세 번의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올랐습니다. 자이언츠의 상대였던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29년 만에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2014 시즌에는 많은 필드 내 판정에 비디오 리플레이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홈 플레이트에서의 고의적인 충돌 역시 금지되었습니다. 시즌 도중에는 5번의 노히터가 나왔습니다.\n\n기록:\nLA 다저스의 잭 그레인키가 22번의 선발 등판에서 연속해서 2자책점 미만을 기록했습니다. 메츠의 투수이자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 제이콥 디그롬이 9월 15일 말린스전에서 첫 8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메이저 리그 기록과 동률을 기록했습니다. 데릭 지터가 은퇴했습니다.
2015, 2014년에 1985년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오른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마침내 월드 시리즈 왕좌에 올랐습니다. 적시에 터지는 타격과 공격적인 주루, 최강의 불펜을 앞세워 로열스는 5차전 만에 뉴욕 메츠를 꺾었습니다. 2015년에도 총 7번의 노히터가 나오면서 투수들이 계속해서 메이저 리그를 지배했습니다. 사이 영 상은 애스트로스의 댈러스 카이클(20승 8패)과 컵스의 제이크 아리에타(22승 6패)에게 돌아갔습니다. 애스트로스와 컵스는 각 리그 올해의 신인까지 배출했습니다(각각 카를로스 코레아와 크리스 브라이언트). 블루제이스의 조시 도널드슨과 내셔널스의 브라이스 하퍼는 각 리그의 MVP를 차지했습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661호 홈런을 치면서 윌리 메이스를 넘어섰습니다. 롭 맨프레드가 새 커미셔너로서 첫 시즌을 보냈습니다.
2016, 오랫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에 굶주렸던 두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만났습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마지막 우승은 1948년이었고, 시카고 컵스는 1908년이었습니다. 인디언스는 .168의 팀 타율로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에서 토론토를 눌렀습니다. 7차전까지 벌어진 혈투 끝에 컵스가 미국의 주요 스포츠 역사상 가장 길었던 무관의 역사를 끝냈습니다. 컵스의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에인절스의 외야수 마이크 트라웃이 두 번째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워싱턴의 맥스 슈어저는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가져갔고,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보스턴의 릭 포셀로가 선정되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투수 마이클 풀머가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에 이름을 올렸고, 다저스의 유격수 코리 시거는 만장일치로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이 되었습니다. 병살타 상황에서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2루에서의 슬라이딩 규정이 변경되었습니다. 데이비드 오티즈가 통산 541홈런으로 은퇴했습니다.
2017,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연장 역전승을 포함하여 7차전 접전 끝에 LA 다저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애스트로스의 호세 알투베가 아메리칸 리그 MVP로, 말린스의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내셔널 리그 MVP로 선정되었습니다. 양키스의 애런 저지와 다저스의 코디 벨린저가 각 리그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단일 시즌 리그 전체 홈런 수는 물론 탈삼진 수도 10년 연속 경신되었습니다. 5월 5일, 컵스와 양키스는 18회까지 펼쳐진 경기에서 총 48개의 탈삼진을 잡았습니다. 9월에는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로 인해 일부 팀이 경기장을 옮겨야 했습니다. 레드삭스의 크리스 세일은 선발로 등판한 8경기에서 연속으로 10탈삼진 이상을 달성하며 메이저 리그 신기록을 썼습니다. 레즈의 스쿠터 제넷은 역사상 17번째로 한 경기 4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텍사스의 3루수 아드리안 벨트레가 3,000안타 고지를 밟았습니다. 이제 투구 없이 고의사구가 가능해졌습니다.
2018, 보스턴 레드삭스가 5차전 만에 LA 다저스를 제압하고 월드 시리즈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3차전, 다저스는 월드 시리즈 역사상 가장 오래 펼쳐진 7시간 20분이 넘는 18이닝 승부에서 승리했습니다. 탬파베이의 블레이크 스넬은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차지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수상자인 메츠의 제이콥 디그롬은 23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라는 메이저 리그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레드삭스의 무키 베츠는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MVP, 밀워키의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시즌 중 두 번이나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습니다. 보스턴의 브록 홀트는 포스트시즌에서 사이클링 히트에 성공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애틀랜타의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는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을 수상했고, 에인절스의 투타겸업 선수인 오타니 쇼헤이는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을 차지했습니다. 알버트 푸홀스가 3,000안타를 달성했습니다.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에서 안타보다 삼진이 더 많이 나왔습니다. 게임 도중 마운드 방문 횟수를 제한하는 새 규정이 도입되었습니다.
2019, 메이저 리그 단일 시즌 전체 홈런 수가 또 경신되었습니다(6,776개). 또한 12년 연속으로 단일 시즌 전체 탈삼진 수도 갱신되었습니다(42,823개). 워싱턴 내셔널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꺾었습니다. 7전 4승제로 펼쳐진 월드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원정팀이 모두 승리했습니다.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정규 시즌 4경기, 일본 도쿄에서 2경기, 영국 런던에서 2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네브래스카주(오마하)에서도 최초로 정규 시즌 경기가 1경기 열렸습니다. 주요 수상자는 다저스의 코디 벨린저(내셔널 리그 MVP), 에인절스의 마이크 트라웃(아메리칸 리그 MVP), 메츠의 제이콥 디그롬(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애스트로스의 저스틴 벌랜더(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애스트로스의 요르단 알바레즈(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 메츠의 피트 알론소(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였습니다. 알론소는 리그 최다인 53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신인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화이트삭스의 팀 앤더슨이 리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335). 오리올스의 크리스 데이비스가 54타수 연속 무안타 기록을 깼습니다. 저스틴 벌랜더와 CC 사바시아가 3,000탈삼진 고지에 올랐습니다.
2020,COVID-19 전염병으로 인해 2020 시즌이 60경기로 단축되었습니다. 특별 규칙이 적용됩니다. 더블헤더는 7이닝 2연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연장전에서는 공격하는 팀이 2루에 주자를 둔 채로 이닝을 시작했습니다. COVID-19 진단을 받았거나 노출된 선수를 위해 별도의 부상자 명단이 생성되었습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대부분의 홈 경기를 뉴욕 주 버팔로의 살렌 필드에서 치렀습니다. 주요 수상자는 프레디 프리먼(브레이브스, 내셔널리그 MVP), 호세 아브레유(화이트삭스, 내셔널리그 MVP), 트레버 바우어(레즈,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셰인 비버(가디언즈, AL 사이영상)가 있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탬파베이 레이스를 4대 2로 꺾었습니다.\n\n마일스톤 그리고 중요한 순간들: DJ 르메이휴(양키스)는 MLB 역사상 두 리그 모두에서 타격 타이틀을 획득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조시 하더(브루어스)는 시즌 시작 이후 12경기 연속 무안타 경기로 MLB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알렉스 키릴로프(트윈스)가 포스트시즌 경기를 시작으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첫 선수가 됐습니다. 브레이브스는 9월 9일 말린스를 29-9로 꺾고 현대 시대의 한 경기에서 득점한 내셔널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습니다. 9월 30일 양키스는 AL 와일드 카드 시리즈의 2차전에서 가디언스를 10-9로 이겼습니다. 4시간 50분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긴 9이닝 경기였습니다.
2021,시즌 중의 코로나19 프로토콜이 완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임시로 변경된 규칙은 기간 동안 계속해서 적용되었습니다. 해외 여행 제한으로 인해 토론토는 7월 30일 로저스 센터에서 경기가 재개될 때가지 플로리다주 더니든 및 뉴욕주 버팔로에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클리블랜드 팀은 106년간 이어온 구단 이름을 변경한다고 발표했습니다. MLB 꿈의 구장 경기는 8월 12일 아이오와주 다이어스빌에서 열렸습니다. 2021년, 9개의 무안타가 나오며 MLB에 새기록을 세웠습니다. 조 머스그로브 선수가 기록한 무안타는 샌디에이고 파드리드 팀의 최초 무안타입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맞붙었고, 브레이브스는 여섯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오타니 쇼헤이 선수(에인절스)가 AL MVP, 브라이스 하퍼 선수(필리스)가 NL MVP를 차지했습니다. 로비 레이 선수(제이스)는 AL 사이 영 상을, 코빈 번스 선수(브루어스)는 NL 사이 영 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즌 동안 코빈 번스 선수는 10타자 연속 탈삼진으로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을 세웠습니다. 조 웨스트 심판은 5,376 경기에 출장하며 빌 클렘이 보유한 종전 최고 기록을 경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