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감독 배경

존 플린	

존 플린 감독은 신시내티 레즈가 1869년 시즌에 트로이 헤이메이커스를 상대했을 때 프로 선수들이 뛰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는 다소 소란스러운 헤이메이커스와 반대로 침착한 신시내티 레즈 팀의 태도에 감명받았습니다.  재능이 뛰어나지 않았던 선수인 플린은 모든 수준의 팀을 감독하면서 야구 커리어를 이어갔습니다.  신시내티 레즈 팀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으며, 해리 라이트의 스타일이 그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플린은 득점을 하는 것이 실점을 막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고급 전략이나 수비 플레이는 모르지만 선수들이 공격적으로 임하도록 지시합니다.  하지만 해리 라이트만큼은 아닙니다. 플린 감독은 아웃은 피하면서도 상대 팀에게 압박을 가하길 원합니다.  칼 맥베이의 매니징을 관찰한 플린 감독은 왼손/오른손 매치업의 이점이 있는 투수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그는 체력이 좋은 투수들과 가능한 한 오래 경기를 하고자 합니다.

플린 감독은 라인업에 젊은 선수를 배치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선수들에게 빠른 스피드를 요구하지만, 그는 항상 파워가 좋은 선수를 선호합니다.  전반적으로 투수보다 타자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배트를 잘 다루는 선수를 선호할 것입니다.  

팀 '하드노즈' 웹	

팀 웹은 어렸을 때 야구를 했으며 실력이 꽤 좋았던 감독입니다.  거친 유격수였던 웹은 득점을 위해 싸우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야구 경기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범 경기에서 디트로이트 울버린을 상대로 부상을 당한 후, 웹은 자연스럽게 감독직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하드노즈'는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과, 경기 중 코가 부러진 적이 몇 번 있다는 사실에 딱 맞는 적절한 별명입니다.

팀은 히트 앤드 런과 도루와 같은 공격적인 전략으로 경기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비교적 새로운 이러한 전략으로 인해 득점을 더 자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웹 감독은 적극적인 주루를 좋아하지만 과도하게 사용하진 않습니다.  상대 팀에 부담이 가지 않는 아웃을 만들 가능성이 큰 빅 히트에는 의존하지 않습니다.   종종 내야수를 플레이트 가까이로 옮겨 상대 팀의 득점을 막는 전략을 생각해냈습니다  투수는 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하지만 웹 감독은 경기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구원투수를 투입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시대로 자신의 역할만 제대로 한다면 선수의 나이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평균적으로 공격보다 수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수준급 투수보다는 스피드가 빠른 선수를 선호합니다.  그는 타자들에게 다른 팀보다 볼넷을 더 많이 얻기 위해 경기 중에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피트 마틴	

마틴은 오리올스, 스파이더즈, 빈이터스 사이의 타이타닉 전투를 보았고 그들의 게임 방식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번트로 안타를 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상대 팀이 실책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피트는 희생을 자주 이용하지 않습니다.  히트 앤드 런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도루에 대해서는 신중합니다.  그는 모든 선수가 경각심을 갖고 가능한 한 추가 베이스를 차지하기를 원합니다.  수비에 집중합니다.  그는 또한 경기를 시작하는 선수들이 경기를 끝내는 것을 선호합니다.  투수는 느리게 교체합니다.  구원투수가 제대로 경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어린 선수를 선호하고 야구의 복잡성을 기꺼이 배우려고 하는 좋아합니다.  마틴은 투수보다는 타자를 선호하지만, 공격력과 수비력의 균형을 잘 갖춘 선수를 원합니다.  스피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각 선수의 타율을 주의 깊게 살핍니다. 타율이 높을수록 안타를 많이 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빌 이스트맨	

빌 이스트맨은 어린 컬리지 선수였기 때문에 직접 뛰는 선수로서 야구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홈런 시도에 운이 따를 수도 있지만, 자칫 팀을 불리하게 할 롱 아웃을 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철학이 감독 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빌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감독들을 존경하여, 여러 감독의 스타일을 합쳐 자신의 트레이드마크 스타일로 만듭니다.

빌 이스트맨 감독은 데드볼 시대에 적합한 감독입니다.  그는 팀에게 상대 팀에 압박을 가하도록 지시하고, 상대 팀이 그의 움직임에 반응하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첫번째 우선순위는 출루하여 선수들이 가능한 길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는 번트 안타를 좋아하고, 선수가 1루에 가면 그를 2루로 희생시킵니다.   그런 후에 3루 도루를 결정합니다.  그는 한 명이 아웃이고 선수가 3루에 있을 때 득점이 더 쉬워진다고 생각합니다.  히트 앤드 런을 좋아하지만 그의 동시대 감독들만큼은 아닙니다.  투수들이 상대 팀의 타구를 유도하는 것을 선호하여 수비와 강력한 스태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고의사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실점을 막기 위해 인필드를 옮깁니다.  이스트맨 감독은 대타자를 많이 이용하지 않고, 투수들이 많은 이닝을 소화하길 바랍니다.  구원투수가 투입되면 교체없이 유지합니다.  그는 투수를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후반 이닝으로 접어들면서 불필요한 위험은 피하려고 합니다.

빌 이스트맨은 신인보다 야구에 대해 더 잘 아는 베테랑 선수를 선호합니다.  빠르고 강력한 팔과 다리를 가진 팀은 승리 확률을 높여줍니다.

션 오로린	

크게 유명하지 않은 마이너리그 선수였던 션 오로린은 수년간 외야수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야수는 아니였으나 타구 실력은 좋았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1910년 위대한 Leland Giants 팀과의 경기에 참가했고, 이 경기에서 그와 그랜트 "홈런" 존슨이 2개의 테이프 메저 홈런을 쳤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게임은 그에게 데드볼이 시대에서도 파워 히팅이 가진 이점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유행에 맞서기로 결심했고 다른 경기 스타일에 중점을 두고 팀을 운영했습니다.

션은 주루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도루 및 히트 앤드 런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주자들의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하지만 마그로 감독이나 챈스 감독만큼은 아닙니다.  후반 이닝에서 점수 차가 비슷할 때만 희생을 이용합니다.  강력한 타자를 상대로 한 투구를 지시할 것이므로 타자를 선정할 때 신중을 가하려고 합니다.  오로린 감독은 동시대 감독들보다 일찍 대타 투수를 이용하고, 선발투수와 구원투수는 모두 평균적인 속도로 교체합니다.  투수라면 누구든 상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왼손/오른손 매치업에 대해 신경쓰지 않습니다.

오로린 감독은 신인 선수 사용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는 야구에 대한 지식이 많고 코칭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선수를 좋아합니다.  그는 히팅(특히 강력한 히팅)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수비는 소홀히 하지도,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오로린 감독은 평균이 높은 선수들을 기용하려고 합니다.

짐 '커터' 로렌스	

옛날에는 짐 로렌스 같은 감독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거칠고 독불장군 같지만, 그가 이끄는 팀들의 매우 공격적인 플레이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상대팀이 흑인팀이든, 백인 세미 프로팀이든, 백인 메이저리그팀이든 상관없었습니다.  로렌스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든 팀이 주루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의 팀은 그다지 빠르지 않았으나 10점을 앞서거나 뒤쳐졌습니다.  로렌스 감독은 빈 공간으로 공을 보내는 타자와 후반 이닝까지 뛰는 투수를 좋아했습니다.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투수는 신뢰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수비의 경우 게임 후반에 선수들을 1루와 3루에 가깝게 가도록 지시하지만, 그는 이를 전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략이라기 보다는 예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커터'라는 별명을 얻었을까요?  쿠바 투어 중 팀 선수 가까이에 투구한 투수를 고의로 스파이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뭐가 문제냐고요?  그 선수는 드래그 번트 이후 1루에 있었습니다.  팀은 별 문제 없이 구장을 떠났지만, 짐은 별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런, 런, 그리고 또 런'이 로렌스 팀의 구호입니다.  히트 앤드 런을 평균보다 많이 사용하지만, 추가 베이스 차지와 도루가 핵심이 될 것입니다.  파워를 강조하며 야수보다는 타자를 선호합니다.  투수를 굉장히 강하게 밀어붙입니다.  9이닝부터 대타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고의사구를 지시하지 않으며, 항상 상대팀을 힘들게 하라고 감독합니다.

로렌스 감독은 선수가 맡은 일만 잘 한다면 베테랑 선수나 유망주 선수 중 한 쪽을 특별히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타자와 속도광으로 팀을 구성하기를 원합니다.  몇 이닝 가지 못하는 투수보다는 인내심 있는 투수를 선호합니다.  수비 능력보다는 공격 능력이 있는 선수를 뽑을 것입니다.

리 해리스	

리 해리스는 선수로서 성공한 커리러를 가지고 감독이 되었습니다.  모두에게 호감을 사는 굳은 결의를 가진 해리스는 1920년 감독직을 시작하여 어린 선수 육성으로 유명한 감독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언제나 야구가 중도의 접근 방식을 필요로 하는 경기라고 믿었습니다.  해리스 감독은 모든 능력을 두루 갖춘 선수를 영입하려고 애썼고, 이는 그의 감독 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파워 타자의 등장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양키스와 어슬레틱스의 언제든 홈런을 치는 능력은 그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해리스 감독이 맡은 팀들은 언제나 타구로 득점 기회를 노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루도 등한시하지는 않습니다.  히트 앤드 런은 좋아하지 않지만, 주자들이 추가 베이스를 차지하도록 지시합니다.   그는 파워 타자의 돌진을 위해 베이스에 있는 주자가 확실해야 하기 때문에 주자의  도루는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비의 경우, 그가 이끄는 팀은 7이닝부터 라인을 지키고 인필드를 들일 것입니다.  상대팀의 번트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코너 야수를 들여오지 않습니다.  해리스 감독은 게임 후반 대주루 요원을 이용하는 것을 선호하며, 대타를 자주 이용합니다.  선발투수를 최소 7이닝까지는 유지하지만, 그 이후로 약점을 보이면 바로 교체합니다.

그는 재능 있는 유망주를 가능한 한 많이 팀에 두려고 합니다.  해리스 감독은 투수보다 타자를 선호하지만, 공격과 수비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합니다.  하지만 항상 파워 타자를 선호합니다.  해리스 감독은 플레이트 위에서의 인내심을 중요시 여기며, 선수들에게 출루할 수 이는 것은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토미 '바유 썸퍼' 세인트크로이	

1920년대가 끝날 무렵 한 감독은 득점에 대한 개념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토미 세인트크로이는 스포팅 뉴스와 프레드 리브와의 인터뷰에서 '옛날' 야구를 언급하며 도루의 미래는 없다고 말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타구로 득점이 가능하다면 달릴 필요가 없죠' 라고 말했고, 이를 증명하듯 그의 팀은 도루나 번트, 또는 20세기 초반 전략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타이 콥, 에디 콜린스, 호너스 와그너와 같은 선수들은 그를 비난했으나 세인트크로이는 절대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실력을 보여주며 본인의 감독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투구를 중요시하진 않았으나 구원 투구이 중요성은 보았습니다.  그는 언제든 투수를 교체하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인트크로이 감독은 한 점 득점만으로 승리가 확실한 후반 이닝 상황에서는 항상 인필디를 불러왔습니다. 다른 경우에는 보수적으로 방어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세인트크로이는 진정한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파워를 가장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파워가 좋은 타자가 있으면 언제나 득점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루나 다른 전략은 그의 경기에서 나타나지 않으며, 그는 희생이나 번트 안타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수비의 경우, 세인트크로이 감독은 게임 후반에만 인필드를 불러왔습니다.  그는 스피드가 있는 도루 주자가 있는 팀을 상대로 이기기 위해서 투수들에게 주자들을 아주 가까이 잡고 있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는 포지션 선수와 포수 대타를 사용하지만 대주루 요원은 드문 경우에만 사용합니다.  그는 게임 초반을 제외하면 교체가 빠른 편이고, 이는 모든 투수에게 적용됩니다.

세인트크로이 감독은 베테랑 선수와 젊은 선수 중 특별히 선호하는 선수가 없습니다.  그는 장타가 가능한 선수를 선호합니다.  속도는 신경쓰지 않으며, 수비는 등한시하지는 않지만 우선으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히팅과 롱 볼입니다.    

칼 시몬스	

칼 시몬스는 힘찬 볼 시대(lively ball era)의 롱 볼 트렌드에 맞선 감독입니다.  그는 머리를 활용했던 비교적 덩치가 작은 선수였습니다.  스피드와 수비가 최고의 장점이었습니다.  수비가 승리의 요소라는 그의 생각은 동시대 감독들의 생각과 달랐지만, 그래도 그는 그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지미 폭스를 기용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너무 커서 안 된다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시몬스 감독은 이 소문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시몬스는 야구의 기본에 충실한 여린 선수들을 선호합니다.  그는 히트 앤드 런과 도루를 사용하지만 희생은 많이 하지 않습니다.  선수들이 번트 안타를 시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탄탄한 수비 플레이를 하고 모든 종류의 전략을 이용합니다.  투수는 끝까지 게임을 뛰어야 하지만, 시몬스 감독은 9이닝 및 추가 이닝이 되면 걱정이 되어 서둘러 불펜으로 가기도 합니다.  시몬스 감독은 가능하면 유리한 플레이를 위해서 왼손/오른손 매치업을 신경씁니다.  그는 대주루 요원을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포지션 선수와 투수 대타는 사용합니다.

시몬스 감독은 유망주 선수를 매우 선호합니다.  선수들은 스피드와 수비 능력이 좋아야 합니다.  그는 공격과 수비의 적절한 비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선수들이 공을 쳐서 팀에 있는 빠른 선수들을 활용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프레드 마천드	

전후 초기에는 프레드 마천드라는 이름이 홈런과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이상적인 타자라고 생각한 마천드는 장타 능력이 있는 선수를 중심으로 한 라인업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생각은 야구 다이제스트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베이브가 될 수는 없지만, 선수들에게 스윙을 계속하도록 지시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리드오프 선수가 2루타를 치고 클린업 선수가 볼을 펜스 밖으로 넘긴다면 2득점을 하는 거죠.'  그의 커리어는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그가 맡았던 팀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천드 감독은 선수들에게 베이스에 이르면 멈추라고 지시합니다.  도루는 계속됩니다.  공격적으로 주루하지만 히트 앤드 런은 자주 하지 않습니다.  번트는 그가 사용하는 전략이 아닙니다.  마천드 감독으 그의 투수들이 항상 타자들을 공격하고 다른 팀 주자들을 베이스에 가까이 두기를 원합니다.  코너 야수 이용을 선호하고, 루 부드로 감독을 관찰한 후로 상황에 따라 인필드 교체도 합니다.  마천드 감독은 투수와 구원투수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고, 왼손/오른손 매치업에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대주루 요원은 쓰지 않지만, 게임 후반 대타자는 사용합니다.

프레드 마천드 감독은 경험과 판단력이 있는 베테랑 선수를 선호합니다.  피칭보다 히팅을 선호하고, 파워에 중점을 둔 공격을 중시합니다.  그는 타자들이 볼넷을 얻거나 실책을 이용할 수 있도록 타자들이 투구를 기다리도록 지시합니다.

스티브 힉스	

스티브 힉스는 1930년과 1940년 초의 위대했던 양키스 팀을 보면서 야구를 접한 감독입니다.  그는 디마지오, 게릭, 디키 및 다른 브롱스 폭격기의 선수들이 후반 이닝에 투입되어 경기를 승리로 이끈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한 것은 팀들의 균형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의 균형을 잡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게임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힉스 감독은 초반에는 전략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플레이를 지켜볼 것입니다.  7이닝부터 감독을 시작합니다.  도루와 히트 앤드 런은 어느 정도 사용합니다.  그의 주루 또한 보수적입니다.  게임 후반에 라인을 가드하고 인필드를 투입합니다.  선발투수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고 투원투수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투원투수를 사용할 때는 오래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투수들에게 조심스러운 투구를 지시하지만 고의사구는 하지 말라고 감독합니다.

스티브 힉스 감독은 로스터 결정에 있어서 특별히 선호하는 선수는 없습니다.  피칭, 수비, 스피드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볼넷 출루 선수를 선호합니다.  선택해야 한다면 베테랑 선수보다는 유망주 선수를 선택할 것입니다.

래리 윌리엄스	

비록 그의 선수 경력은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입대하며 끝났지만, 래리 윌리엄스는 야구를 계속 하고 싶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40년대 후반에 하위 리그에서부터 시작했고, 거기서 그는 자신의 감독 스타일을 발전시켰습니다.  거칠지만 공정한 감독으로 알려진 윌리엄스는 경기장에서 허튼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의 거친 성격은 그의 스타일을 형성하였습니다.  벌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윌리엄스는 항상 어떻게 참전 경험이 그가 야구를 계속하게 했는지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야구는 전쟁에서 마주하는 위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윌리엄스 감독은 히트 앤드 런을 좋아하지 않지만 희생 번트를 초반에 사용하고 후반에도 번트를 사용해 안타를 노립니다.  그는 주자들이 공격적인 주루를 하기를 원하지만, 경기 후반에는 보수적인 플레이를 합니다.  그는 경기가 어려울 때 투수들에게 강력한 타자에게 피치 어라운드하라고 지시합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선수들에게 라인에 더 가깝게 플레이하도록 지시합니다.  투수 대타는 이용하지만 포지션 선수 대타는 이용하지 않습니다.  윌리엄스 감독은 선발투수와 구원투수 모두에 대해 교체를 빠르게 하는 편입니다.
윌리엄스 감독은 팀을 고르게 구성하는 편입니다.  그는 히팅과 수비를 약간 더 강조합니다.  윌리엄스 감독은 스피드보다는 파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안타를 시도하는 타자를 선호합니다.  경험이 있는 선수면 더 좋습니다. 

더그 채프먼	

더그 채프먼의 감독 스타일은 양키즈에 매리스와 맨틀이 있었던 1960년대 초에 뿌리를 둡니다.  채프먼 감독은 양키스를 월드 시리즈 챔피언 2회 우승, 페넌트 5회 우승으로 이끈 파워, 수비, 그리고 피칭의 조합에 감명 받았습니다.  채프먼 감독은 댄 대니얼과의 인터뷰에서 '양키스와 똑같아질 순 없겠지만, 훌륭한 팀들의 좋은 점들을 가진 팀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 말했습니다.  안타깝지만 60년대 후반에는 투구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양키스가 서서히 시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한동안 채프먼 감독과 그의 팀은 성공적인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채프먼 감독은 주루 경기는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가 이끄는 선수들은 평균보다 도루를 적게 하고, 보수적인 베이스 경로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병살타를 피하기 위해 히트 앤드 런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의 팀은 희생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번트 안타도 시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수비의 경우 이닝 중반에는 인필드를, 후반에는 라인 가드를 하기를 원합니다.  채프먼 감독은 피치 어라운드를 싫어하지만 고의사구를 다른 팀보다 자주 사용할 것입니다.  선발투수 교체 시기는 평균적인 편이지만 구원투수 교체는 빠르게 합니다.  그는 타자/투수 매치업을 활용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채프먼 감독이 이끄는 팀은 히팅과 파워가 피칭과 스피드보다 약간 더 중요합니다.  그는 타자들이 볼넷을 얻도록 지시합니다.  채프먼 감독은 야구에 대한 지식이 있는 베테랑 선수들을 선호합니다.

윌리 가닛		

윌리 가닛은 오랫동안 자신의 시대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위 수준의 리그를 맴도는 것은 감독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특히 추세에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감독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윌리 가닛은 덩치는 작지만 마음은 넓은 선수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연습하여 수비가 훌륭한 2루수가 되었습니다.  타구 능력이 부족하여 스타 선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야구 감각 덕분에 그는 감독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감독들처럼 그도 자신의 원칙을 반영하는 팀을 꾸리려 했습니다.  촘촘한 수비와 강력한 스태프가 그의 원칙이었습니다.  자신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했을 때 그에게 큰 성공이 찾아왔습니다.  1960년대 말에는 피칭과 수비가 주목을 받았고, 이는 가닛 감독의 강점이었습니다.  드디어 그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가닛 감독은 상대팀의 득점을 막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득점을 해야 하긴 하지만 그리 많인 점수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도루를 많이 하지 않았으나 히트 앤드 런은 자주 이용했습니다. 그의 팀에 알맞는 득점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적극적인 주루 또한 권장했습니다.  게임 초반에만 희생을 이용했습니다.  번트 안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코너 야수들을 주기적으로 사용하지만 그 외에 특별한 수비는 없습니다.  가닛 감독은 투수들이 가능한 모든 전략을 사용하도록 합니다.  그는 투수들이 주자들을 항상 가까이 잡고 7이닝부터 자유롭게 고의사구를 이용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이때 핀치 어라운드도 하길 원합니다.  가닛 감독은 선발투수들에게 7이닝까지 뛸 것을 권장합니다. 그 이후로 필요한 경우 구원투수를 투입합니다.  후반에는 대타를 이용하지만 포지션 선수 대타는 이용하지 않습니다.

가닛 감독은 유망주와 베테랑 선수를 모두 사용합니다.  그는 피칭과 수비를 선호하고, 파워보다는 스피드가 좋은 선수를 선호합니다.  그는 스윙을 하고 공을 쳐서 수비에게 부담을 주라고 지시합니다.

데이브 크라머 		

1970년대는 야구 역사에 있어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자유 계약, 인조 잔디, 지명 타자, 다목적 경기장, 화려한 유니폼 및 다른 여러가지 요소들로 인해 국민적인 스포츠인 야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이 보였습니다.  또한 성공적인 팀이 되려면 스피드나 파워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데이브 크라머 감독은 파워 쪽에 선 감독이었습니다.  한 경기를 보다가 크라머 감독은 자신의 감독 방식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시카고에서 척 힐러가 텍사스 안타를 치고 윌리 메이스가 400피드 홈런을 친 경기를 봤습니다.'  '공을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고 1루 진출하는 것보다 윌리가 베이스를 돌고 2점이 올라가면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크라머 감독은 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이러한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습니다.  그의 팀이 출전한 경기는 10-8 경기가 많았지만, 그는 자주 정상에 올랐습니다.

크라머 감독이 이끄는 팀은 때때로 도루를 하지만, 히트 앤드 런은 거의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선수들은 게임이 시작되면 적극적으로 플레이합니다.  그는 게임 초반에 종종 희생을 이용하지만 번트는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팀은 9이닝부터 더욱 전력을 다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는 1루수 및 3루수를 지나치는 1루타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라인 가드는 항상 선호하지 않습니다.  크라머 감독은 투수가 주자를 가까이 잡아두고 상대 타자를 곤란하게 하도록 지시합니다.  그는 포지션 선수 및 투수 대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크라머 감독은 가능한 경우 선발투수를 유지하지만 7이닝부터는 불펜을 투입하기도 합니다.  왼손/오른손 매치업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베테랑 선수보다 유망주 선수를 선호합니다.  그는 피칭보다는 히팅을 선호하지만 공격과 수비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합니다.  파워가 좋은 타자를 선호하며 적극적인 스윙을 지시합니다.

